"국내 기업들치고 회계감사를 반기는 기업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겁니다"

기업주들의 기업회계 마인드를 비꼬는 한 회계사의 말이다.

경영내용을 될수 있으면 감추려 들고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식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회계사는 "회계감사를 하다보면 가장 결정적인 사항은 감사가 마무리될
즈음에 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감사중에 회사의 잘못된 회계관행이나
시정할 부분을 권고하면 얼굴색이 바뀐다"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실제 지난 95년 D화학은 모회계법인이 제시한 감사의견을 기업오너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 새로운 감사인을 받아들여 부랴부랴 보고서를
제출했다.

기업주들의 이같은 독단은 기업내 회계팀과도 마찰을 빚기도 한다.

기업회계팀 관계자들은 "봉급쟁이인 이상 윗선에서 이렇게 저렇게 뜯어
고치라는 요구에 따라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에 대한 기업경영자들의 변명은 이렇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려면 어쩔수 없이 회계장부를 분칠이
아니라 성형수술이라도 해야 할때가 있다"고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신용대출을 받을 경우 재무제표가 객관적 기준이 되는데 이것이 시원찮다면
누가 선뜻 대출해 주겠는냐"고 덧붙인다.

따라서 감가상각, 재고자산, 환차손처리방법 등의 변경이 양성적으로 허용돼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자금차입을 위해서라면 이익을 부풀리거나 비용을
과소계상하는 등 음성적인 분식결산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실회계에 따라 투자자들이 입는 피해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기업회계감사를 철저히 해내지 못하는 외부감사인(회계법인)도 문제지만
1차적인 책임은 기업경영자들에게 있다"고 한 주식투자자는 말했다.

상황에 따라 손익을 조정하기 위해 감가상가방법 변경 등 회계기준을 수시로
바꾸는 것도 결국 일반투자자들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기업을 일반에 공개한 상장기업의 경우 신뢰성 있는 투자정보를 제공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불성실한 회계장부 색칠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는
여론이다.

여기에다 "외국투자자들이 몰려오고 세계화로 해외진출을 추진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 재무제표 등 기업내용을 투명하게 알려주는게 급선무"라며
경영자들의 기업회계 의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김홍열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