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처리방향을 논의한 채권단운영위원회가 열리기 2시간여전인 26일
오전 8시 김선홍회장은 여느때 처럼 송병남 경영기획단장등 주요 계열사
사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거의 매일 있다시피한 사장단간담회지만 이날 회의는 기아의 운명을 좌우할
채권단회의가 예정돼있어 그 어느때보다 긴장감이 높았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회의결과는 기아특수강과 기아인터트레이드등 2개의 계열사에 대해
화의신청을 철회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키로 방침을 바꿨다는게 전부다.

채권단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김회장의 사표제출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결과를 발표한 엄성용 기아그룹기획조정실이사는 "김회장을 축으로
자구노력을 추진한다는 기본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사표제출불가방침을
재확인했다.

김회장은 오전 10시30분쯤 간담회를 마친후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을
둘러보겠다며 회사를 나섰다.

채권단운영위원회가 김회장의 사표제출을 전제로 한 기아자동차의
조건부화의동의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 오후에도 김회장사표제출건에
관한한 기아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채권단이 이날 운영위원회를 열고 기아자동차가 신청한 화의에 동의해
주기 위해 기아측에 새로 내건 조건중 김회장사표제출에 관한한 "절대 불가"
방침인 셈이다.

이밖에 채권단이 요구한 강도높은 자구이행과 화의신청때 제시한 채무상환
이자율조정 등에 관해 기아측은 최선을 다해 요구를 충족시키겠다고 밝혔다.

기아특수강과 기아인터트레이트 등 2개의 계열사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라고 기아측은 설명했다.

기아는 당초 이들 2개의 계열사에 대해 화의를 신청했으나 화의로 이들
회사를 조속히 처리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기아특수강의 부채는 1조1천8백억원, 종합상사인 가이인터트레이드의
부채는 2백80억원이다.

기아관계자는 "부채가 많은 이들 2개계열사처리를 조속히 매듭짓기 위해서는
법정관리가 보다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기아특수강은 이미 현대와 대우가 공동경영키로 결정돼 있다.

기아인터트레이드는 기아자동차판매주식회사로 통합시키려던 방침을 수정,
제3자에 팔기로 했다.

기아는 4개계열사의 화의신청에 대한 주위의 여론이 나쁜데다 기아자동차만
이라도 화의를 통해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채권단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 처리방침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기아자동차화의동의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채권단의
요구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구계획의 중요한 사항인 인원감축에 대해선 지난 7월15일 부도유예협약
적용이후 7천명 가까이 인원을 줄이는 등 계획보다 빠른 속도로 추진하고
있다고 기아는 밝혔다.

기아는 당초 자구계획에서 연말까지 8천8백35명을 줄이기로 했다.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의 한 직원은 "각 생산라인에서 사람을 더 달라고
아우성"이라며 "계획보다 더 줄일 경우 생산라인을 정상 가동하는데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채권단의 또다른 요구사항인 채무상환이자율 조정문제에 관해 기아측은
"기아자동차의 화의만 받아들여지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기아는 화의를 신청하면서 담보채권은 연 9%, 무담보채권은 연 6%로 상환
하겠다고 조건을 제시했다.

기아관계자는 채권단과 채무자가 시간을 두고 협의, 화의조건을 수정할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날 채권단운영위원회와 은행장회의에서 제시된 새로운 조건중
김회장사표제출만은 원점에서 맴돌게 됐다.

< 고광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