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대응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채권단회의를 하루 앞둔 25일에도 기아측은 공식반응없이 사태추이만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기아가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 주위의 시각이다.
이에따라 기아가 취할수 있는 최후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는 현시점에서 기아가 선택할수 있는 폭이 극히 좁지만 일단 세갈래로
예상하고 있다.
첫째 화의철회.
기아는 현경영진이 부도유예협약종료일이후 과도기에 있을지 모를 부도를
막으면서 기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화의를 신청했으나 "경영권을 고집하기
위한 시간벌기"라는 비난이 쏟아짐에 따라 화의를 취소할 가능성이 있다.
화의신청이후 채권단과 정부등 이해관계인들은 "화의는 경영진만이 살기
위한 욕심"이라고 기아를 몰아치고 있다.
기아측 시각으론 화의의 배경이 왜곡되고 있는 셈이다.
기아관계자는 "화의만이 모두 살길이라고 판단했다"며 "그러나 상황이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따라 기아는 화의신청이후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화의를 전격 철회하면서 기아의 운명을 다시 채권단에 맡기는 방안을
택할수도 있다.
선의로 신청한 화의가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불가피하게 화의를 백지화
할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두번째 선택은 김선홍회장이 조건부 사퇴를 발표하면서 화의를 이끌어 내는
것.
채권단은 그동안 김회장이 물러나고 노조가 조건없는 인원감축동의서를 낼
경우 기아자동차를 정상화시키고 신규로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기아가 화의를 신청한 후 채권단 생각이 바뀌고 있으나 아무튼 김회장의
사표가 기아처리의 전제조건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채권단이 법정관리로 방향을 틀어가는 것도 김회장을 비롯한 현경영진을
퇴진시키기 위한 수순이라는게 기아측 생각이다.
이에따라 채권단이 화의를 받아주면, 다시말해 당장 제3자인수위험없이
기아자동차의 운명을 기아와 채권단의 협의에 맡겨 주면 김회장이 조만간
사표를 낼수도 있다고 기아는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기아의 일부 직원들은 정부나 채권단이 제3자인수 시나리오없이
기아자동차를 정상화시킨다는 방침을 세우면 김회장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풍전등화의 위험에 처한 기아호가 안전한 항구까지 갈 것이라는 믿음이
서면 김회장도 기아를 떠날수 있다는 얘기들이다.
세번째는 그야말로 외통수로 현재의 입장을 고수하는 길이다.
화의철회나 화의를 관철시키기 위한 김회장의 조건부사퇴 모두 결국 기아의
침몰로 끝날 소지가 큰 만큼 마지막까지 버티는 방법이다.
기아관계자는 "지금은 청와대나 재정경제원이 법정관리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채권단을 조종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기아가 어떤 방법을 선택해도 기아
처리는 일정한 수순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화의철회는 무장해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화의동의를 조건으로 한 김회장의 사퇴역시 기아자동차정상화라는 기아측
희망과 달리 "본격적인 기아흔들기"만 가능하게 해주는 악수가 될수도
있다는게 기아측 일부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이에따라 기아내부엔 옥쇄하는 심정으로 끝까지 가보자는 심리도 팽배해
있다.
기아부도후 법정관리가 경제사회에 미칠 충격을 담보삼아 배수진을 치자는
주장이다.
궁지에 몰린 기아가 무슨 수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 고광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