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대표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사면문제를 놓고 벌인 "9.2 담판"이 사실상 결렬로 끝나면서 여권이
안개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대통령과의 담판이후 적잖은 충격을 받은듯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이대표는 3일 자신의 향후 행보에 대한 일단을 내보였다.

이대표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비서진에 있다는 당내 비주류의 주장을
수용, 하순봉 대표비서실장 등을 경질하면서 조기 진화에 나섰다.

그는 그러나 김대통령과의 심야 긴급회동 결과에도 불구, 두 전직대통령
사면문제를 재론할 여지를 남겨둔채 비주류측의 후보교체 공론화 움직임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빠른 시일내에 반전카드를 강구하지 않을 경우 더욱 심각한 사태가 초래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여권내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이대표는 이날 경선당시 일등공신이자 김윤환 고문계인 강재섭 윤원중
의원을 중용해 주류중심의 당 운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대표측이 오는 8일 열리는 당소속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후보교체론을 포함한 모든 현안을 논의하자고 강조하고 있는 점은 비주류측의
후보교체론 공세에 세 우위를 내세워 맞불작전을 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대표측은 이에 대해 "명분측면에서 봐도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집권여당 최초의 완전 자유경선과정을 거쳐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만큼
후보를 중심으로 당력을 집결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정권재창출을 위해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논리를 압도할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이인제 경기도지사와 서석재 서청원 의원 등 민주계 인사들은
"후보교체" 목소리를 한층 높이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후보교체론을 수면위로 끌어올려 이대표의 "백의종군"
결단을 받아내겠다는 자세여서 여권내부에 전운을 드리우고 있다.

민주계의 이같은 움직임은 특히 김대통령과의 교감 내지는 의중을 읽을수
있는 인사들과의 연결고리를 토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기도
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대표체제가 당분간 미로속을 헤맬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한 것도
이같은 관측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수 있다.

그만큼 비주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지사를 지지하는 원내외 지구당위원장 20여명은 이날오전 여의도 이지사
사무실에서 만나 8일 연석회의에서 후보교체및 교체절차 문제를 공식
제기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당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사람은 막지 않겠다"는 이대표의 발언에
대해 "당의 위기를 극복할 의지가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계 좌장격인 서석재의원이 이날낮 청와대에서 김대통령과 오찬 독대를
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 봐야한다.

서의원이 후보교체론의 선봉에 서있는데다 이지사와 박찬종 고문 서청원
의원 등 비주류 핵심인사들을 연쇄적으로 만난뒤 김대통령을 찾은 만큼
이대표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집중적으로 개진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통령이 극히 이례적인 심야 청와대 방문에도 불구, 이대표의
건의를 냉정하게 거절한뒤 곧바로 서의원을 만난 점은 충분히 "의심"을
살만한 대목이라는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청와대측은 이와관련, 이대표에 대한 김대통령의 지지는 변함이 없으며
이번 사태로 김대통령이 "딴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대통령이 이대표의 정치력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엔 수긍하는 분위기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김대통령이 이대표를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도와주는데도 한계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때문에 8일 잇달아 열릴 신한국당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와 김대통령
초청 당직자.국회상임위원장단 만찬은 여권이 혼조국면을 타개할지 여부를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