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세계무역기구) 금융협상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WTO는 회원국들에 대해 당초 지난 7월14일까지 양허안을 제출하도록
했으나 1백29개 WTO회원국중 현재까지 양허안을 제출한 국가는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13개국에 불과하다.

재경원이 파악한데 따르면 이번달 협상시작전에 양허안을 제출할 계획인
나라는 10여개국밖에 되지 않는다.

10여개국은 한국 대만 멕시코 등 중진국들이다.

재경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 95년7월 미국이 개도국들의 양허가 미흡하다며
불참했던 일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오는 12월12일 협상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는 WTO금융협상이 지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회원국의 수가 1백29개에 달하는데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이 중진국과 개발도상국가들에 대해
일방적으로 금융개방을 요구하는 모양을 띠게 돼 개방압력을 받는 국가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는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브라질 등 남미국가들이
해당된다.

특히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국가들은 최근 자국 화폐가치폭락으로
크게 고전하고 있고 남미국가들도 지난 94년 멕시코사태로 크게 곤욕을
치른 터여서 금융개방에 소극적이다.

동남아국가들은 양허안을 작성할 여유조차 없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관측이고 선진국들도 이같은 사정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뿐만아니라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한 아세안국가들은 선진국의 압력에
대해 민족감정차원에서 큰 반감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외국인지분율이 50%이상인 금융기관에 대해 지분율을
50%이하로 내리도록 요구하고 있다.

WTO가 추진하는 금융개방과는 정반대되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 판국이니
양허안제출이 먹혀들 분위기가 아니다.

이같은 화폐가치하락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 WTO는 금융안정
을 위한 비상조치는 허용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는 개방을 통한 금융기관의 경쟁력강화가 금융안정의 토대가
된다고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외환시장의 위기를 몸으로 겪고 있는 해당국가들 입장에서는
선뜻 금융개방을 확대할 수 없는 입장이다.

비상조치가 허용된다고 해도 개방안을 잘못 작성하면 긴급한 상황에서
만에 하나 손발이 묶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WTO금융협상이 법적인 구속력이 있다는 점도 이들 국가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협정안이 일단 결정된뒤 해당국정부가 이를 위반한 경우 상대방국가의
제소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또 일단 서명한 내용을 약화시킬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WTO협상의 경우 과거에는 조선 해운 농업 등 각분야협상이 동시에 진행돼
한쪽에서 양보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얻을 것이 있는 경우가 많았으나 금융
협상은 개도국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사안이어서 협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도 이같은 불안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환율급등우려와 외국인주식투자가의 이탈 등으로 개방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해있다.

이에따라 정부는 WTO양허안에 민감한 사항은 가급적 담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따라 정부는 98년12월까지 허용하기로 한 은행 증권 투신사 현지법인
진출허용 등은 양허안에 담지 않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물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약속한 사항이지만 이를 굳이 WTO협상안에
담는 부담을 질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또 당초 거시경제의 안정과 내외금리차가 2%포인트 이내일 때 검토하기로
했던 채권시장개방에 대해서도 가급적 언급하지 않을 방침이다.

기존에 시행한 사항을 중심으로 주권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양허안을 제출한다는 복안이다.

< 김성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