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터져나온 부도유예협약 폐지설로 금융시장이 또한번 소동을
치렀다.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정부의 실언이 또다시 시장을 흔들어 놓자
재경원의 조심성없는 행동에 금융계의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난데없는 폐지설로 주식시장에서는 기업에 대한 악성루머가 되살아나고
자금시장은 다시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정작 협약의 주체들인 은행과 종금사들은 도데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오전내내 파문을 막는데 애를 먹었다.

이 협약을 만들때 금융기관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불쑥 내밀어 분란을
일으키더니 이번엔 재검토론을 흘려 말썽을 빚고 있는 셈이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재경원이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부도유예협약을
폐지하거나 재검토하겠다는 것인지부터 묻는다.

탄생배경이야 어떻든 명실공히 금융기관간 자율적인 협약이기 때문이다.

관련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협약의 시행과 사후관리는 전적으로 금융기관들의 책임아래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재경원과 긴밀한 협조관계에 있는 은행감독원조차 재경원의 전횡을
비판하고 있다.

은감원 관계자는 "협약의 초기아이디어가 재경원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존폐문제까지 거론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고 말했다.

금융기관 자율협약을 마음대로 만들었다가 운용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다시
마음대로 없애겠다는 "관치금융"의 발상을 벗어던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또 있다.

재경원은 설사 기업퇴출제도를 전면적으로 손질한다는 차원에서 협약
재검토를 시도했을지라도 보다 심도깊은 논의를 거쳤어야 했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이라도 감안했더라면 그토록 섣불리 협약폐지
설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금융시장이 혼란한 상황에서도 지원책은 없다고 강조해 상황을 악화시켜
놓더니 여전히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조일훈 < 경제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