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불황' 풍속도] (5) '8 to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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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9 to 5"라는 영화가 인기를 끈적이 있다.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샐러리맨들을 다룬 이야기였다.
지금 한국에서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제목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그 제목은 "8 to 11".
불황은 이처럼 샐러리맨들의 근무 스타일을 바꿔놓고 있다.
밤 11시에 퇴근하는 건 보통이다.
이뿐만 아니다.
토요일과 일요일도 없다.
달력의 빨간날에 회사에서 저녁밥 먹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일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인 셈이다.
"집에 다녀오겠습니다"와 "주말반납"이 일상화되고 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오후 7시면 일과가 끝났다.
우리기업이 잘나가던 2,3년전부터 격주 휴무제가 확산됐다.
"놀토"니 "일토"니 하는 말도 유행했었다.
"퇴근은 제시간에 주말은 자기계발을 위해"가 앞서가는 회사를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부하직원을 늦게까지 잡아두는 상사는 무능한 사람이 이었다.
남들은 집에 가는 시간에 남아서 일하는 사람도 "푼수"로 찍혔다.
총수가 정한 퇴근시간을 어겼다고 해서 사원이 시말서를 쓰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불황의 시대인 지금은 다르다.
회사에 깊게 패인 주름살은 종업원의 발을 붙잡고 늘어진다.
7시 출근, 4시 퇴근을 외치던 삼성그룹에서도 부서별로 밤 11시까지
일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격주휴무제의 효시격인 LG그룹 역시 과장급이상에게 "놀토"란 사전상의
단어가 되가고 있다.
물론 "아무도 퇴근하지 마라, 주말에 회사에 나오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거리가 더 많아진 것도 아니다.
밤늦게 일하거나 주말을 희생한다고 수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회사가 어려운데 초과근무 수당을 타겠다는 "간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찍히면 끝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주말반납 퇴근반납을 하고 있는 것.
사실 "8 to 11"이나 "월화수목금금금"은 요즘 나온 게 아니다.
지난 60년대와 70년대 한창 공업화로 땀을 흘리던 시절에는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서 구식은 버리자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으로 "몸으로 떼우기"가 꼽혔다.
그래서 정시퇴근과 "월화수목금 그리고 연휴"가 널리 퍼졌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다시 20년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몸으로 떼우기가 부활하고 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신바람이 나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그때는 회사에서 밤을 새워도 피곤할 줄 몰랐어요.
수출이 막 늘어나니 한편에서는 밤새 공장을 돌리고 다른 편에서는 새로운
공장을 짓고 그랬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예요.
돈을 벌기 위해 야근을 하는 게 아니라 부도를 막기 위해 밤일을 하니
신이 날리가 없잖아요"(금화기전 정수일사장).
불황은 이처럼 퇴근시간도 주말도 신바람도 모두 빼앗아가버렸다.
그리고 퇴근부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샐러리맨들을 자라목으로 만드는 불황의 고통은 제 구실을 잃어버린
퇴근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조주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샐러리맨들을 다룬 이야기였다.
지금 한국에서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제목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그 제목은 "8 to 11".
불황은 이처럼 샐러리맨들의 근무 스타일을 바꿔놓고 있다.
밤 11시에 퇴근하는 건 보통이다.
이뿐만 아니다.
토요일과 일요일도 없다.
달력의 빨간날에 회사에서 저녁밥 먹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일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인 셈이다.
"집에 다녀오겠습니다"와 "주말반납"이 일상화되고 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오후 7시면 일과가 끝났다.
우리기업이 잘나가던 2,3년전부터 격주 휴무제가 확산됐다.
"놀토"니 "일토"니 하는 말도 유행했었다.
"퇴근은 제시간에 주말은 자기계발을 위해"가 앞서가는 회사를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부하직원을 늦게까지 잡아두는 상사는 무능한 사람이 이었다.
남들은 집에 가는 시간에 남아서 일하는 사람도 "푼수"로 찍혔다.
총수가 정한 퇴근시간을 어겼다고 해서 사원이 시말서를 쓰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불황의 시대인 지금은 다르다.
회사에 깊게 패인 주름살은 종업원의 발을 붙잡고 늘어진다.
7시 출근, 4시 퇴근을 외치던 삼성그룹에서도 부서별로 밤 11시까지
일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격주휴무제의 효시격인 LG그룹 역시 과장급이상에게 "놀토"란 사전상의
단어가 되가고 있다.
물론 "아무도 퇴근하지 마라, 주말에 회사에 나오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거리가 더 많아진 것도 아니다.
밤늦게 일하거나 주말을 희생한다고 수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회사가 어려운데 초과근무 수당을 타겠다는 "간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찍히면 끝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주말반납 퇴근반납을 하고 있는 것.
사실 "8 to 11"이나 "월화수목금금금"은 요즘 나온 게 아니다.
지난 60년대와 70년대 한창 공업화로 땀을 흘리던 시절에는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서 구식은 버리자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으로 "몸으로 떼우기"가 꼽혔다.
그래서 정시퇴근과 "월화수목금 그리고 연휴"가 널리 퍼졌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다시 20년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몸으로 떼우기가 부활하고 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신바람이 나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그때는 회사에서 밤을 새워도 피곤할 줄 몰랐어요.
수출이 막 늘어나니 한편에서는 밤새 공장을 돌리고 다른 편에서는 새로운
공장을 짓고 그랬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예요.
돈을 벌기 위해 야근을 하는 게 아니라 부도를 막기 위해 밤일을 하니
신이 날리가 없잖아요"(금화기전 정수일사장).
불황은 이처럼 퇴근시간도 주말도 신바람도 모두 빼앗아가버렸다.
그리고 퇴근부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샐러리맨들을 자라목으로 만드는 불황의 고통은 제 구실을 잃어버린
퇴근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조주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