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랫동안 기다렸던 승리였다.

미 투어에서 이미 10승을 거뒀고 자질만은 누구로 부터도 인정 받았지만
메이저 우승이 없어 "심장이 약하다"는 소릴 듣던 러브3세.

그는 이번 완벽 우승을 미최고의 골프교습가로 손꼽혔던 부친 데이비스
러브 주니어의 영전에 바쳤다.

18번홀에서 왼쪽으로 약간 꺾여 들어가는 3.6m버디가 떨어지는 순간은
미국의 대표적 골프집안의 승리이기도 했다.

그는 레너드, 캐디 (그의 동생인 마크), 와이프, 모친, 여동생 등과
차례로 포옹하며 메이저 정상을 향한 길고 긴 여정을 마감했다.

<>러브3세는 걷기 시작할 때부터 교습가인 아버지 지도아래 골프채를
잡았다.

그가 태어난 1964년4월13일은 러브 주니어가 매스터즈대회에서 31위를
차지하던 날이었다.

그는 이미 10살때부터 프로골퍼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선언했다고.

성장한뒤 대학 (노스 캐롤라이너대)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85년 미국아마대표팀격인 워커컵대표가 됐다.

85년 바로 프로로 전향, 그해 Q스쿨 7위로 86년 미투어에 입문했다.

<>86년엔 상금랭킹 77위에 드라이빙거리부문 1위를 차지했고 결혼후
87년 MCI헤리티지클래식에서 투어 첫우승에 성공하며 상금랭킹도 33위로
올라갔다.

88년은 악몽의 해.

부친 러브 주니어가 비행기충돌사고로 사망했고 랭킹도 75위로 후퇴했다.

그러나 90년부터 상승세를 타 지난해까지 총 10승을 기록했다.

<>러브 3세는 지난해 오클랜드 힐에서 US오픈 최종라운드 최종홀에서
약 70cm 파퍼트를 실패하며 3퍼트보기를 기록, 연장 진출에 실패
(우승자는 스티브 존스)하는 뼈아픈 "메이저 추억"이 있었다.

그는 95년 매스터즈에서도 2위에 그쳤었다.

더욱이 러브3세는 PGA선수권에서 89년 공동 17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었고
94년부터 지난해까지는 3년 연속 커트통과조차 실패했었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9월의 라이더컵대표로도 확정됐다.

<>러브3세는 금년 8번째로 상금 1백만달러 돌파 선수 (1백만9천3백
60달러)가 됐다.

랭킹1위는 타이거 우즈로 1백83만5천5백달러이고 2위가 저스틴 레너드로
1백37만7천3백달러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