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이트칼라 사회에서 반팔 와이셔츠를 입으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아무리 더워도 교양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긴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야하는게 전통이다.

빌 클린턴, 빌 게이츠 등 저명인사에서부터 말단 샐러리맨까지 예외는
없다.

이런 미국에서 최근 반팔 와이셔츠족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더운데 눈치볼 게 무어냐는 실속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 대표주자로 농산물 가공업체인 코나그라사의 회장을
지낸 찰스 하퍼, 변호사인 데이비드 톱재스키,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의
웨이드 페처 이사, TV 탤런트 데니스 프란츠 등을 들고 있다.

인기있는 연재만화의 주인공 딜버트와 심슨도 반팔족.

26년간 반팔 와이셔츠를 고집해온 페처 이사는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다닌다고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반팔
와이셔츠의 예찬론을 편다.

의류판매업체인 브룩스 브러더스는 최근들어 총 와이셔츠 판매량 중 4%
정도가 반팔 와이셔츠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일부 패션쇼에서도 반팔 와이셔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화이트칼라들은 아직도 이같은 현상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의류업체들도 한편으론 반팔 와이셔츠를 팔면서 한편으론 반팔족들을
경멸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의판매업체인 헌팅턴 클로시어의 마이클 스턴 회장은 "비록 반팔
와이셔츠를 팔고는 있지만 반팔족을 이해할 수는 없다.

반팔 와이셔츠는 양복과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옷"이라고 주장한다.

반팔 와이셔츠를 아예 취급하지 않는 백화점도 있다.

니만마쿠스 백화점의 데릴 오스본 이사는 "우리 백화점은 반팔 와이셔츠를
팔지 않는다.

또 종업원들에게 반팔 와이셔츠를 입은 고객은 무조건 피하라고 가르친다"
고 말했다.

이같은 미국인의 긴팔 선호사상은 양복이 처음 등장한 19세기에 시작됐다.

당시 신사들은 남들 앞에서 절대 양복을 벗지 않았다.

와이셔츠는 매일 빨아 입어야 하는 "속옷"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매끝으로 살짝 나온 와이셔츠는 속옷을 깨끗하게 빨아입고 다닌다는
증거물이었다.

또 유난히 털이 많은 이들 입장에서 긴팔 와이셔츠는 털을 감쪽같이
가리는 훌륭한 도구가 됐다.

결국 반팔 와이셔츠는 세상에 태어난지 7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미국
사회에서 빛을 보지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반팔족들은 당분간 "선구자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전망이다.

코나그라사의 하퍼 전회장은 "홍보담당인 린 페레스가 화가를 시켜 연례
보고서에 실을 내사진에다 와이셔츠 소매를 그려 넣은 적이 있다.

아마 그녀는 내가 반팔로 다니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 모양"이라고
말했다.

< 조성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