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건의 배후에는 명화가 있다"

일본재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노무라증권과 총회꾼간의 검은 커넥션에도
명화의 불법거래가 있었던것으로 밝혀졌다.

구 평화상호은행(스미토모은행에 흡수통합)의 "금병품"사건(85년),
미쓰비시상사의 "르누아르그림"사건(89년), 이토만사건(91년)등에 이어
또다시 명화가 문제를 일으킨것이다.

실제 매매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구입한 다음 그 차액을 챙기는 명화거래,
검은돈(우라킨, 이금)을 조성하는데는 수억엔짜리 고가그림이 최적이란
사실이 다시한번 증명된 셈이다.

노무라증권의 "검은돈조성"의 과정은 간단했다.

지난 95년 사카마키 히데오 전사장은 총무담당 후지쿠라 노부타카
상무에게 명화구입을 지시했다.

거래상대방은 도쿄도내의 A화랑.

후지쿠라 상무는 A화랑에서 복수의 고액그림을 구입했다.

A화랑은 그 돈의 일부를 백리베이트형태로 노무라에 제공했다.

거래된 그림은 10여점에 거래총액은 30억엔이었다.

노무라는 화랑에서 백리베이트로 다시 돌아온 4억엔상당 가운데 대부분을
문제의 인물인 총회꾼 대표 고이케 류이치에게 건네줬다.

이처럼 그림은 거래과정에서 엄청난 리베이트를 챙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그림이 5억엔상당에 거래됐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 그림은 르누아르 특유의 활기넘치는 에로티즘을 담은 풍만한
여성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유럽에서라면 5천만엔정도면 살수 있을 정도"라는 도쿄시내 화랑주인의
설명에서 이를 쉽게 확인할수 있다.

어떤 이유로 이런일이 벌어질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불투명한 가격형성과정과 전근대적인 유통경로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에서와 같은 경매시장이 없다.

업자들만으로 구성된 밀실의 "교환회(교환회)"에서 결정된다.

교환회의 대금결제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몇몇 화상이 자금을 모아 풀을 만든 다음 그림을 판 업자에게 이 자금에서
대금을 지불한다.

구입자에게는 한달간 지불을 유예해준다.

따라서 자금력이 없는 화상도 그림을 거래할수 있다.

브로커화상들이 설칠수 있는 이유다.

화상들간에 수차례 거래가 된 다음 애호가의 손에 들어갈때 쯤이면 이미
그림의 질과는 관계없이 고액상품으로 둔갑해버리고 만다.

구입한 고객들도 이름이 알려지는것을 싫어한다.

이러한 사정들이 얽히고 설켜 그림이 검은거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것.

이번의 경우에도 A화랑과 노무라증권이 거래하기 전에 이미 미술상들간의
백리베이트를 동반한 거래가 이루어졌던것으로 알려졌다.

A화랑은 다른화랑(B)과, B화랑은 C화랑과 거래를 했다.

이 과정에서 노무라와 A화랑이 똑같이 10~15%의 백리베이트를 지불,
결과적으로 그림의 값을 고액으로 만들어버리고 만셈.

그림거래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에는 "보따리화상"에서 끝나기
때문에 매매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루트가 밝혀졌더라도 상대방이 납득하고 샀기때문에 문제될게
없는게 현실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명화가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불법자금거래의
수단으로 될수밖에 없는게 일본의 현실인것 같다.

[ 도쿄 = 김경식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