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의 9개 계열사가 부도방지협약 대상이 된 것은 무엇보다
<>제2금융권의 계속된 자금회수 <>자동차 내수 불황 <>인수.합병(M&A)관련
악성 루머 <>계열사의 경영난 <>노사간 갈등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한데 따른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대기업들의 잇단 부도로 야기된 금융공황
으로 제2금융권이 기아그룹 계열사에 대한 대출금을 꾸준히 회수하면서
자금압박이 가중돼 온 것이다.

기아그룹은 이미 지난 4~5월 두달만 해도 제2금융권으로부터 무려
4천2백억원이나 자금을 회수당했으며 최근까지도 매일 종금사들이
1천억~2천억원대의 어음을 결제에 돌려왔다.

김선홍 기아그룹회장도 최근 기자와 만나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기업에 단자나 금융기관들이 관행을 무시하고 대출금을 일시에
갚으라면 어느 기업이고 살아날 재간이 있느냐"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기아그룹은 김회장이 강경식 부총리겸 재경원장관을 찾아가 비정상적인
금융거래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호소하는 한편 종금사 대표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IR에 나섰으나 종금사들의 자금회수는 계속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금융기관들이 기아 계열사가 발행한 상업어음 결제를 꺼리면서
협력업체들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제2금융권이 기아그룹에 대한 대출금을 계속 회수해 대기 시작한데는 악성
루머가 크게 작용했다.

특히 기아의 경영실패를 강조하는 음해성 루머를 비롯해 기아가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의 첫 대상이 될 것이라는 루머등이 금융권에 불안감을 조성
했다는게 기아의 주장이다.

이번 사태는 정상적인 기업도 악성루머에 한번 휩싸이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각 계열사의 영업부진이 직격탄이 됐다.

꾸준히 내수 2위를 유지해온 기아자동차는 올들어 대우의 신차 공세에
밀려 3위의 자리에 물러나 앉았다.

아시아자동차도 적자상태를 지속하고 있으며 계열사로 편입된 (주)기산은
1조2천억원이 넘는 자금이 건설현장에 깔려 있는등 경영난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기아특수강은 지난 2년동안 무려 1천6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증설에 1조원을 투입했으나 특수강 수요부진과 가격하락 금융비용부담
등으로 적자규모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기아그룹의 이번 사태에는 강성 노조도 책임져야할 부분이 있다.

물론 올해는 전 계열사 노조가 임금협상안을 회사에 일임했지만 그동안
기아자동차를 비롯한 기아그룹 계열사 노조는 경영에 큰 부담이 돼온 것이
사실이다.

단적인 사례로 기아는 4월부터 기아자동차판매를 별도로 분리해 출범할
계획이었으나 노조의 반발로 2개월이나 회사설립이 지연됐고 이 과정에서
영업노조의 쟁의가 거세지면서 판매가 크게 줄어들었다.

여기에 더해 일부에서는 기아그룹 김선홍회장의 장기 경영체제가 회사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고 일부에서는 경영층간, 경영층과 직원들간의
알력이 불그러지면서 회사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