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편을 하자니 장애요인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안 하자니 살아남기
어려울것 같고..."

세계4대 자동차대국인 프랑스 자동차산업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의 한
단면이다.

한국도 자동차산업의 구조개편 논의가 한창 일고있지만 그 필요성은
우리보다 프랑스가 훨씬 시급한 상황이다.

자동차 메이커간의 합병이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도
정치지도자나 노조의 반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구조개편은 양대산맥인 르노사와 PSA(푸즈 시트로엥)그룹간의 합병을
통해 프랑스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

매출기준으로 르노사는 세계 8위, PSA는 9위.

두 회사가 합치면 세계 5위권내에는 들 수 있어 GM 포드 도요타같은
"강적"들과 경쟁을 해 볼만하다는 분석이다.

세계 자동차산업은 10대메이커간에도 이미 양극화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GM 포드 도요타 폴크스바겐 벤츠등 5대 메이커는 21세기에도 세계
자동차산업을 주도하는 그룹으로 분류된다.

이에반해 크라이슬러 닛산 혼도 르노 PSA는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잘못하면
경쟁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 중도그룹이다.

"어정쩡한 그룹"에서도 특히 르노와 PSA의 앞날은 비관적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시각이다.

"강자"로 살아남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내수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화이다.

그런데 프랑스메이커들은 요즘 내수도 신통치 않다.

신차구입시 정부에서 지원해 주던 보조금제도가 작년 9월 폐지된 이후
신차수요가 급락하고 있다.

지난 상반기중 양사의 내수 판매량은 작년 같은기간에 비해 무려 26%나
감소했다.

프랑스메이커들의 해외생산기지는 주력메이커들과 비교할때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시장에선 르노와 PSA가 10년전에 이미 철수했다.

연초 푸조가 중국공장의 가동을 중단한데 이어 최근엔 르노가 벨기에공장을
폐쇄키로 결정했다.

최근 남미지역에 현지공장을 건설중이긴 하지만 대세를 뒤엎을만한 규모도
아니다.

유일한 "홈 그라운드"인 서유럽시장에서의 전망도 어두운 편이다.

판매증가율이 기껏해야 2~4% 수준인데다 업체간 경쟁도 치열하다.

게다가 유럽연합(EU)및 일본과 체결한 자율규제협정이 99년 폐지되면
일본메이커의 서유럽시장 공략이 가시화될게 분명하다.

두 메이커가 합병하더라도 고민거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르노와 PSA의 주력시장은 서로 같다.

양사 모두 소형차에서부터 배기량 3천cc 미만의 중형차에 집중돼 있다.

M&A가 이뤄지더라도 상호보완성이 없어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도 일단은 양사가 합병하거나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는게 시급하다는게
자동차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해 당사자들이 구조개편에 극구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합병이 이뤄질 경우 엄청난 실직자가 발생할게 뻔하니까 조스팽사회당정권
이나 종업원들은 결사반대하는 입장이다.

양사의 최고경영진도 "합병은 향후 10년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합병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자동차전문가들은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인 양사 경영진이 조만간 자리에서 물러나면 뭔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바람이다.

유럽자동차협회 회장이면서 PSA그룹회장인 칼베는 9월에 물러나고 전직
식품회사 사장이었던 장 마르텡 폴츠가 총수자리를 맡기로 예정돼 있다.

르노의 슈바이처사장도 타이어메이커인 미슐린 미국현지법인사장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카를로스 고스가 오기로 돼 있다.

양사의 신규 최고경영진들이 비교적 젊은 세대이니만큼 변혁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증권 금융기관의 자동차산업 분석가들은 총수가 바뀐다
해도 양대 메이커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에 반대하는 보수주의 세력들이 워낙 강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기업의 최고경영진과 정치지도자들이 동조하지 않으면 구조개편의
필요성이 아무리 시급해도 이뤄질수 없는게 현실인 것이다.

변하지 않으면 프랑스의 자동차산업은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
인데도 그렇다.

< 런던=이성구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