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기억하십니까"

1964년 12월8일 서독 루르지방의 한 탄광촌.

막장에서 갓 나온 5백여명의 한국인 광부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부들의 얼굴과 작업복은 석탄에 묻혀 흙투성이 그대로였다.

대통령이 단상에 오르자 애국가가 울렸다.

음악만 흐르고 가사는 나오지 않았다.

슬픔과 설움으로 목이 메었다.

광부들이 복받치는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끝내 대통령도 눈물을 흘렸다.

곁에 있던 뤼브케 서독 대통령도, 육영수 여사도, 수행원도 모두 울었다.

백영훈(67)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이 쓴 "아우토반에 뿌린 눈물-잊어버린
경제이야기"(산업개발연구원 간 7천8백원)에 나오는 대목이다.

저자는 당시 대통령 경제고문이자 통역관.

이 책은 한국이 전쟁으로 인한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된 과정을
되짚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국 진입 방안을 살핀 것이다.

"한국이 달성한 30여년만의 고도성장은 바로 서독 베트남 중동 등지에서
흘린 근로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개발연대이자 고난연대였던 60~70년대의 경제 이야기를 되새김으로써 오늘의
위기 극복책을 제시해보려고 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경제개발의 첫 삽을 뜬 사람은 서독에 파견된 광부
5천여명과 간호사 2천여명.

그들은 한국이 처음 상업차관으로 도입한 1억5천만마르크(3천만달러)에 대한
담보였다.

그들의 월급은 고스란히 독일의 은행에 입금됐으며 한국정부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그들의 예금은 차압당하도록 돼 있었다.

정부는 그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이땅에 공장을 지을수 있었다.

이후 베트남전에 파병된 어린 병사들과 중동에 진출한 근로자들이 개발
연대를 이끌어 갔다.

목숨과 바꾼 소중한 한푼은 건설 기계전자 자동차산업의 밑거름이 됐다.

"8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는 뼈를 깎는 노력을 찾아볼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피하려고 합니다.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외국 신문의 보도는 어느 정도
정확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백원장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경제이야기의 실종에서 찾았다.

80년대초까지 국민의 절대적인 관심사였던 "잘살기"가 이후 정치 체육
등으로 흘러버렸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구조조정으로 헤쳐 나가자고 제안했다.

저자는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독일 에르랑겐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앙대 교수, 대통령 경제고문, 국회의원,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위원장 등을 지냈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