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 한국문학학교 교장 >

김소진의 마지막 소설집 제목은 여러 점으로 의미심장하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강 간).

그는 자신이 직장암으로 홀연히, 더군다나 의사의 예상보다 턱없이 빨리
죽게 될 것을 알았던 것일까.

하지만 이것은 애당초 부질없는,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질문이다.

요절에 대한 아쉬움도 사실 그런 것인지 모른다.

요절은 "천재"를 전제하고, 천재의 요절은 거대한 빈자리를 전제한다.

우리는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아쉬움이 클수록 망각의 속도가 큰 것이 인지상정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거대한 빈 자리야 말로 온전히 작가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 빈자리는 작가가 현실에 남긴 거대한 공동이며 아무도 채울수 없는,
그러나 현실과 더불어 그 크기가 커져가는 공동이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김소진의 죽음에 덧씌워진 이 말은 그의 작품세계
를 보는 우리의 시선에 두 겹의 통로를 열어준다.

사람은 눈인가, 아닌가.

산다는 것은 눈사람인가, 아닌가.

항아리의 공동은 죽음인가, 아닌가.

사라지는 옛날의 흔적은 검은 항아리, 죽음의 흔적인가, 아닌가.

치열한 추억행위는 삶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위한, 아니 이미
죽음에 속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항아리의 검은 공동이 추억의 자세하고 자상한, 그리고 평사적인 흔적들로
넘친다.

하지만 여전히 검은 공동이다.

토종말과 정통 문법의 진지한 소설 미학.

이 말은 김소진 소설을 평하는 잣대로 흔히 동원되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상투적이고 그의 문학(의 빈자리)을 이해하는데 있어 그걸로 그만인
"최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겹눈을 갖고 이 세상을 바라보았다.

세밀화를 연상시키는 그의 리얼리즘적인 묘사는 삶보다, 죽음의 영역에
더 본질적으로 속해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