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전통회화는 나름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

또 그 와중에 우리가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의
전통속에 육화시켰을까.

한국회화사 연구의 이 지난한 화두를 풀기 위한 전시회가 마련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의도 서남미술전시관 (3770-2670)에서 12일~7월2일 열리고 있는 "근대
전통회화의 정신전"이 바로 그것.

기존의 "근대성 탐색"을 표방한 전시회들과 달리 이 기획전은 외래적
요소의 수용과 그것의 한국적 변용양상이 뚜렷이 감지되는 작품만 엄선,
우리 근대회화사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출품작가를 보면 전통화단과 근대화단을 잇는 가교역을 한 안중식과
조석진, 그리고 이들의 지도아래 서화미술회에서 수학한 김은호 최우석
이용우 이상범 변관식 노수현 등 "동양화 1세대" 작가군, 구한말 최고의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린 채용신, 묵죽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김진우 등
대가들이 망라돼 있다.

전시작들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석진의 "초상화"와 최우석의
"조석진초상" 등 2점.

2점 모두 서양화법과 근대 사진술의 영향을 반영, 육리문 (근육의 주름)을
따라서 그리는 전통화법에서 벗어나 극사실적인 명암법을 구사하고 있다.

인물화에 있어서의 그같은 영향은 채용신에게서만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와 같은 화법이 당시 무시못할 저변을
형성하고 있었음이 확인된 셈.

이밖에 신일본화의 새로운 감각이 엿보이는 김은호의 "쌍승무"와
"신라무도", 서양화의 정물구도를 도입한 이도영의 "기명절지", 동양화에
현대적 조형미를 접목시킨 이응로의 "농무" 등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당대작가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또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30여점의 작품들은 대부분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어서 자료적 가치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