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6월초 안방극장에 다양하고 푸짐한 차림표를 내놓는다.

한석규 심혜진 문성근 주연의 사실주의적 느와르 "초록물고기"(드림박스),

박신양 이수아 이경영이 열연하는 에로틱 드라마 "쁘아종"(스타맥스),
김희선 장동건 커플의 로맨틱 코미디 "패자부활전"(비디오플러스), 박중훈
오지명이 좌충우돌하는 코미디 "똑바로 살아라"(영성)등이 비디오팬의
손길을 기다리는 영화.

올초 극장에 상영된 이들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비디오시장에 나와 한판
대결이 불가피해졌다.

"초록물고기"(서울 20만)외에는 극장흥행이 신통치 않았지만 각기
장르가 뚜렷하고 고정팬을 지닌 스타가 있어 좋은 승부를 벌일 것으로
예측된다.

소설가 이창동의 감독데뷔작인 "초록물고기"는 소박한 꿈을 간직한
청년 막동이(한석규)가 폭력세계에 빠져들고 파멸하는 과정를 통해
90년대 한국사회를 어둡고 우울하게 그려낸 수작.

"식당하나 열어서 온 가족과 함께 사는" 꿈을 가진 막동이.

하지만 막 제대하고 고향집에 도착한 그에게는 뿔뿔히 흩어져 고생하는
가족들과 답답한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막동이는 기차안에서 우연히 만난 미애(심혜진)에게 끌려 그녀의 정부인
폭력배보스 배태곤(문성근)의 휘하에 들어간다.

꿈을 이루기 위해 뒷골목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하던 막동이는
보스를 괴롭히는 김양길을 살해한다.

"닥터봉""은행나무침대"로 영화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한석규는
거칠면서도 순수한 막동이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살인을 저지르고 공중전화박스에서 절규하는 장면, 차창에 얼굴을
들이대고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죽어가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

"쁘아종"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저예산독립영화"내일로 흐르는 강"을
만든 박재호감독이 흥행을 의식하고 만든 작품.

소외된 도시 젊은이들의 일탈과 사랑을 파격적이고 음울한 영상에
담아낸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순박한 청년 정일(박신양), 남자를 유혹하는 꽃뱀으로
살아가는 서린(이수아), 서린을 성적노리개로 삼는 전직형사 영수(이경영).

이야기는 이 세명을 축으로 진행된다.

박신양과 이경영이 각각 극단적인 순수와 타락을 상징하는 정일과
영수역을 무리없이 소화했지만 가장 빛나는 배우는 신예 이수아.

독약이란 의미의 향수"쁘아종"처럼 순수와 타락의 이중적 모습을 온몸에서
뿜어낸다.

"패자부활전"은 "닥터봉"의 이광훈감독이 유행이 지난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의 부활을 외치며 만든 영화.

신세대스타인 김희선 장동건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고 돌고래쇼,
보트추격전, 화려하고 감각적인 세트등 다양한 볼거리를 집어넣었지만
고만고만한 "예쁜 영화"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실연당한 두 남녀의 톡톡 튀는 사랑이야기.

"똑바로 살아라"는 박중훈 오지명 명계남 권용운등 코믹연기 전문가들이
펼치는 폭소 한마당.

비리공무원들의 검은 돈만을 노리는 희대의 사기꾼 장사기(오지명)와 그의
부하 마고봉(박중훈),

그들을 쫓는 형사들의 에피소드가 나열된다.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한 오지명은 TV드라마에서 보여줄 수 없는 "육두문자
애드립"실력을 마음껏 과시한다.

저급한 성적 표현이 난무하고 억지웃음을 짓게하는 부분이 많지만
"킬링타임용" 영화로는 충분하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