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대의 빚을 갚지 못해 스스로 법원에 파산신청을 낸 개인에게 처음
으로 "소비자 파산"선고가 내려졌다.

서울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이규홍 부장판사)는 30일 2억5천여만원의
빚을 갚을 방법이 없다며 소비자파산을 신청한 K대 교수의 부인 현모씨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대해 파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현씨의 재산이 전무하다는 점을 감안,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배분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없다고 판단해 파산폐지 결정도 함께 내렸다.

현씨는 이번 선고로 빚 전체를 면제받게 됐으나 파산자로 규정돼 면책
복권 결정 때까지는 금융대출이나 신용거래 취업 등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

소비자 파산은 신용거래나 보증 등으로 인한 과다한 채무로 절망에 빠진
채무자를 구제하는 제도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채무변제능력이 없는 개인이 과다한 채무에 시달릴
경우 열심히 일해 재산을 모아도 채권자들이 모두 가져가 버려 근로의욕을
상실한채 더욱 낭비적이고 타락적인 생활에 빠질 수 있다"며 "인생 자체가
파탄에 떨어진 소비자를 구제해 정상적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파산선고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통상 파산선고를 내릴 경우 파산자가 갖고 있는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배당순위에 따라 배분하고 그 배분이 끝나야 파산폐지 결정
하게 된다"며 "그러나 현씨는 소송 비용조차 부담할 수 없을 정도로 재산이
거의 없어 이 절차를 생략하고 동시파산폐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현씨는 1개월 이내에 면책신청을 할 수 있으며 법원이 면책결정
할 경우 1년후 복권돼 파산선고로 잃었던 모든 권리를 회복하게 된다.

현씨는 지난해 12월 사업을 하는 오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보증을
섰으나 오빠가 도피하고 사채업자 등이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자 13년동안
간호사로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빚 일부를 변제한 후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현씨의 남편 이모씨도 현씨와 함께 보증을 섰다가 대학교수 월급의 반을
압류당한 채 아버지 집에서 살고 있다.

< 김인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