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방법원 "민사합의 50부"가 부도방지 협약의 혜택을 독톡히 보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극심한 자금난으로 부도위기에 몰린 기업들에 대해 일정기간
채권변제를 유예해주는 부도방지협약을 본격 시행하는 덕분에 법정관리신청
기업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민사 50부 판사들은 진로에 이에 대농그룹이 부도방지협약 적용대상
기업으로 지정되자 일감이 줄게 됐다며 안도하는 표정을 굳어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만도 1조5천억원이 넘고 자산기준으로 재계순위 34위에
랭크돼있는 대농그룹이 거느린 계열사만 24개.

만약 부도방지협약이 없었다면 고스란히 법정관리신청을 통해 법원으로
몰릴 판이었다.

이미 한보와 삼미건으로 자산기준 재계 5위, 계열사 수로는 2위에 올라
있는 민사 50부로서 이같은 "문어발식 확장"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특히 회사정리사건은 업무량이 일반민사사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고 사건정리에만도 최소 1년이상 통상 5년정도는 걸리는 업무여서 오히려
기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사실 50부는 삼미가 전격적으로 법정관리신청를 신청한 이후 특정기업의
법정관리 신청여부를 문의해오는 은행과 거래기업들의 전화에 몸살을 앓았을
정도.

다행히 부도방지 협약덕분에 짐은 덜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도방지협약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황인데다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계열사를 은행들이 과감히 포기할 경우 이들 기업들이 줄지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때문이다.

현재 50부 소속 1명의 부장판사와 3명의 배석판사가 관리하고 있는 부실
기업만도 한보, 삼미그룹 계열사를 포함해 모두 60여개.

재판부 관계자는 "한보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평소 업무량이
3분의1 정도 늘어났다"며 "만약 대농 진로그룹 계열사가 한꺼번에 들어
왔으면 정신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내 유수의 법률회사(Law Firm)들은 부도방지협약때문에 잠재적
"고객"을 놓쳤다면 내색은 않지만 몹시 아쉬워하는 눈치다.

1건에 10억원 정도를 받는 회사정리사건은 이들 로펌들에게는 매력적인
의뢰인인데다 협약적용대상기업들이 모두 대기업으로 그만큼 수임료도 많기
때문이다.

< 이심기.김인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