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혁신적 유학자로서 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고
임시의정원 부의장을 역임한 심산 김창숙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97년 경북 성주군에서 태어난 선생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매국노
이완용을 처형하라는 상소문 "청참오적소"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했다.

1918년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되자 유림대표를 규합,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고 각국 대사 공사
영사관과 중국의 정계 요인에게 배포했다.

선생은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부의장으로 일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으나 재판을 거부, 징역 14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른 끝에
장기간의 수형생활로 앉은뱅이가 돼 집행정지로 출옥하기도 했다.

광복후에는 성균관대학을 재건해 학장,초대 총장을 역임하며 유학의
근대적 발전과 후진 양성에 이바지하다 62년 5월 83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