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하고 원색적인 조명아래 흐느적거리는 패션모델들의 육감적인 몸짓.

SBS 수목드라마 "모델" (연출 이강훈, 극본 이윤택)에서 매회 등장하는
장면이다.

여기에 극의 내용과 무관한 자극적인 춤, 폭력장면과 삼각관계,
여자의 질투 등 각종 흥미 흥미유발 장치를갖추고 시청자를 유혹한다.

이 드라마는 패션모델의 삶과 애환을 심도깊게 보여주겠다는 거창한
의도 아래 1년간의 기획을 거쳐 제작됐다.

하지만 애초의 생각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단순히 시청자의 눈을 끌기
위한 화려한 영상으로만 도배를 하고 있는 실정.

모델이라는 직업의 특성이 "보여지는" 것인 만큼 이 드라마는 영상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갖고 출발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스토리와 구성의 빈약함을 자극적인 영상으로 메꾸려는 생각만
가득하다면 이는 작가정신 및 연출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처사.

이런 류의 드라마가 대부분 그렇듯 "모델"에서도 역시 신데렐라를
탄생시키며 시청자들의 허영심을 부채질한다.

김남주 송선미 이선진 등이 패션모델로 성공하지만 그 과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특히 대학에서 교수초빙 제의를 받을 만큼 실력있는 디자이너인데다
모델로선 그다지 좋은 조건을 갖추지 못한 김남주가 톱모델이 되는 과정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또한 젊은 연기자들의 정제되지 못한 연기는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한다.

결국 시청자는 화려한 화면밖에는 볼 게 없는 셈이다.

MBC "별은 내가슴에" KBS "욕망의 바다" 등의 감각적 드라마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모델"은 화려한 생활속에 각종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모델의 실제 삶을 담기보다 겉모습만을 강조, 이들에 대한 동경심을
자극해 시청자의 눈길을 끌어보겠다는 계산을 앞세우고 있다.

이같은 드라마는 많은 시청자들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드라마를 단순한
오락의 대상으로 끌어내릴 뿐인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를 한편의 "가볍기 짝이 없는 쇼"로 만들고 있는 이 드라마가
스스로의 위치를 찾지 못한다면 매회 등장하는 화려한 패션쇼의 모습조차
더이상 눈길을 끌지 못하고 시청자와의 거리감 또한 커질 것이다.

< 양준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