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시작으로 한보비리에
관한 진실규명을 위해 열리고 있는 청문회가 의혹해소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국민들의 의혹만 증폭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청문회의 운영방식을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여야 각 당은 10일 각각 청문회 운영방안 및 제도개선을 위한 회의를 열어
우선 이번 청문회가 당초 기대와는 달리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기억이
안난다" "확인해줄수 없다"는 등 무책임한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는 증인들의
답변태도에 있다고 보고 우선 이를 방지할 조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총회장 등 증인들은 위증죄의 형량이 이미 기소된 횡령이나 뇌물공여죄의
형량보다 낮다는 법률상의 맹점을 이용,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받고 있는
여야의원들에 대한 ''떡값'' 공여를 시인하기 보다는 함구로 일관했다.

따라서 청문회에서 증인들의 입을 열어 증언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위증의 혐의가 있는 증인은 "국회 증언및 감정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가
아니라 형법상의 위증죄로 처벌하는 것을 비롯 진실된 증언을 이끌어 낼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정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민회의는 이와 관련, 이날 증인이 검찰이나 법원에서 자백한 내용에
대해 증언거부를 할수 없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청문회 제도개선 시안''을
마련했다.

신한국당과 자민련도 각각 자체적으로 개선대책을 마련, 여야는 오는 14일
여야총무회담을 갖고 청문회 개선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이와 함께 중복질문과 부실답변을 유도할 수밖에 없는 청문회의 운영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여야합의에 따라 소속 정당및 특위위원별로 신문시간을 배분하는 진행방식
은 자칫 먼저 질문하는 특위위원에게 핵심적인 질문을 선점하는 기회를
부여, 나중에 질문하는 위원들은 중복되는 질문을 할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해 주로 이들이 증인
신문을 벌이는 미국 의회의 청문회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정계일각
에서 나오고 있다.

신한국당 박희태총무는 "이번 총무회담에서는 청문회 심문방식 질의의원
숫자 질의시간 등에 대한 개선방안 외에 청문회 제도자체에 대한 개선방안
등 장기적 과제도 함께 다룰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한보비리 국정조사는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서둘러
시작됨에 따라 의원들이 자료를 확보하는데 애로를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판중에 있는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국정조사가 행사되어서는
안된다"는 "국정감사와 조사에 관한 법률"을 위반, 진실을 밝혀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내재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한국당 한보 국정조사 특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신범 의원은 이날
이와 관련, "이번 국정조사는 실체적인 진실규명을 위한 장이 되지 못하고
증인들에게 끌려다님으로써 국회의 위상만 실추시켰다"며 "국정조사의 실효성
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보사건에 관한 재판절차가 모두 끝나거나
현 대통령 퇴임후로 국정조사를 미뤄야 한다"며 특위위원직 사퇴서를
당지도부에 제출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