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한낱 과거이야기가 아니다.

E H 카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했듯이 역사는 늘 현재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나아갈 바를
시사한다.

TV도 역사를 외면할 수 없다.

시청자들에게 역사를 바로 알리고 올바로 인식하게끔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

KBS1TV "TV조선왕조실록" (화요일 오후 10시15분)은 이같은 역할을
충실히 담당한다.

"역사의 라이벌" "역사추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개발된 기법과 축적된 노하우를 살려 조선왕조 4백72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조선왕조실록"의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 바로보기"를 시도한다.

이번주 (1일) 방영 내용은 "킹메이커 정도전의 사후이력서".

간단히 말하면 "정도전 바로보기"다.

정도전의 업적과 사상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기본시각을 바탕으로
그의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긴 행로를 추적한다.

정도전은 이방원과의 세력싸움에서 밀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후 5백년동안 역사에서 철저히 매장됐고 현재 그가 묻힌 무덤조차
남아 있지 않다.

고려말 천민거주지인 거평부곡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이상국가의 꿈을
키운 그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다.

이후 한양 천도의 주역이자 문물제도의 정비자로서 새 왕조의 기틀을
닦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다.

하지만 왕실종친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병을 혁파하고 재상중심주의를
통해 왕권을 견제하려던 그의 시도는 라이벌 이방원에 의해 분쇄된다.

이같은 내용을 역사다큐의 고정된 형식에서 탈피해 드라마식 재연,
리포터의 현장찾기, 다양한 시청각 자료의 삽입, 유인촌의 표정있는 진행
등을 통해 흥미롭게 구성한다.

리포터가 정도전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현장 (재연드라마 부분)에 찾아가
그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직격 인터뷰"나 컴퓨터모니터를 통해
실록의 내용을 전하는 코너는 참신하면서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게 한다.

그 결과 이 프로그램은 정도전이 시대에 앞선 혁명가이며 민본주의에
바탕한 그의 사상은 오늘날 민주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정도전의 업적과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 그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잃어버린 균형 잃은 해석은 아쉽다.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갖다붙인 "킹메이커"란 단어 역시 프로그램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와는 거리가 멀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