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임기가 1년가량 남은 상황에서 나라안에 위기감이 고조
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남북관계 등 어느곳 하나 성한 곳이 없고 불안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재봉 전총리.

그는 상당수 국민들이 김대통령이 하는 일에 박수를 보내던 시절에 뜻이
안맞는다며 과감히 민자당을 탈당했다.

당시 그가 내세운 비판은 "6공세력의 강변"으로 매도돼 빛을 발하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학자의 선견지명으로 재평가받고 있는 부분도
있다.

현실 정치에 참여했다 물러난 노전총리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논현동 사무실로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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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허귀식 < 기자 > ]

-작년 4.11총선이후 어떻게 지내십니까.

"공부나 하고 있어요.

이번 학기부터 1주일에 한번정도 명지대에 나갑니다.

의례적인 행사에도 가보긴 하지만 시간낭비이지요"

-선거를 직접 치러 보시고 느끼신 점은.
(노전총리는 지난해 4.11총선에서 강남갑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
했다)

"정치는 국민수준만큼 갑니다.

반발자국 앞서 가면 대성공이죠.

선거한번 치러보니까 돈의 힘에 당할 수가 없더라고요"

-돈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을 수 있는 지역에서 출마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게 판단하고 뛰어들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덕의 소치로 상품의 질이 나빠 안사주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국민의 판단이니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또 출마할 계획은 있으신가요.

"(고개를 저으며) 현재로서는 없어요"

-과거 3당합당시절에도 내각제 얘기가 나왔지만 요즘 정치권에서도
내각제니 대통령제니 개헌얘기가 분분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나는 원래 내각제론자가 아닌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잘못 알려져
있어요.

3당합당에는 내가 관계된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비서실장을 맡기전에 이미 이뤄진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는 같은 세력이 분열돼 있을 때, 다시말해서 정책
이나 이념에 의한 분열이 아니라 "야심"의 차이에서 분열됐을때 가장 위험
합니다.

당시 내각제얘기는 4분5열된 세력을 통합해 안정된 정치로 밀고 나가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 아니었겠느냐, 그렇게 봅니다"

-지금의 개헌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은 그런 양상은 아니고 선거전략의 일종으로서, 생존목적으로 나오는
얘기죠.

그러니까 세력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부에서 어떻게 보든간에 세계 양대전쟁 위험지대중의
하나인 나라에서 권력을 완전히 분산해 주주총회하듯 할수는 없습니다.

권력강화라는 것이 독재라는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는 최고권력자의
결단이 필요한 몇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될 나라에서 그것을 무시하고 단순
편의로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은 정략적인 것에 불과하죠.

내각제 하면 생존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내놓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집권당은 이회창 대표체제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당대표로서 어떻게 한다, 이런게 없습니다.

과거같으면 민주화라는 구호 하나만 내세우면 다 묻혀질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화목표를 거의 구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군이래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금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대통령이 지명하면 자리 하나 얻는 그것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요즘 국회와 정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정치수준이 그 정도에 와 있는거죠.

국회에 가보면 알지 않아요.

정책경쟁이 없습니다.

가령 노동법만 보더라도 분명한 노선을 밝혔어야 하는데 그런게 없었어요.

국민의 관심사인 노동문제에 대해 어떤 철학을 정립해 두고 있는지 도대체
알수가 없죠.

최소한 시민들이 판단할 근거를 제시하고 난후에 시민의 정치교육을 해주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무슨 선거에서든 표를 던지는 기준이 학교
동창 지역연고 인상이 좋다든가 키가 크다든가 작다든가 하는 것들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안기부법 처리과정은 어떻게 보십니까.

"국가안보에 대해서 노선을 어떻게 정립하고 있는지, 북한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북한의 전쟁도발위험이 항상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정치집단이
안보문제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이런게 없었죠.

이것은 구름잡는 얘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얘기인데도 말입니다"

-김영삼정부를 일찌감치 비판하셨는데 요즘은 맞아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 듯합니다.

"내가 판단하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 맞아 떨어져 겁이 납니다.

(웃음)

안기부법을 원상복귀시키는 것 자체가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명제보완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명제에 대해서 나는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평가받는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실명제를 보완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고 봅니다.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실명제는 내가 정부에 있을 때 골치를 썩인 문제인데 과거 부가가치세를
도입할때와 비슷한 형태이지요.

부가세를 도입하면 세무공무원이 업자와 접촉할 필요가 없어지고 세금은
더 걷힌다는게 명분이었는데 나는 그때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세원포착이 정확히 안된 상황에서, 물동이 움직이는데 그게 전부 포착이
돼야 자동으로 돌아갈 것 아닙니까.

그게 안되고 지하경제규모가 상당한 상황에서 부가세를 도입하니 세금만
올라가고 부정부패만 강해지고 물가도 올랐습니다.

부가세를 도입해서 지금 달성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실명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명제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실명제를 하려고 하면 그것에 부수
되는 조건을 먼저 형성해야 합니다.

부수조건은 하나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혁명을 하듯 긴급명령을
발동했는데, 칼 가지고도 안되는 것이 경제입니다.

옛날 공산주의 국가에서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도 맘대로 못한게 경제
였습니다"

-최근의 경제적 어려움도 실명제가 한 원인이라고 보십니까.

"부가세 해서 물가올리고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 형식으로 실명제를 해서
뭐가 어떻게 됐습니까.

과소비니 해외재산도피니, 돈이 얼마나 빠져 나갔는지 모릅니다.

실명제의 부작용입니다.

정부당국이고 언론이고 내놓는 것을 보면 실명제로 영향받는 사람은 인구의
몇%밖에 안된다, 그러니 이 사람들에게 코스트를 지불하게 해도 괜찮다는
얘기인데 이것은 시장경제논리가 아닙니다.

돈은 원래 소수가 많이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 그 돈이 돌아 생산에 기여하게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원시적인 논리를 내세워 평균주의의식을 자꾸 부추기는지
모르겠어요"

-비자금사건처럼 부정축재를 잡아낸 것은 실명제 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명분을 그렇게 내세웠는데 김대통령의 결정적인 실수가 거기에 있습니다.

김대통령은 자기가 내세운 명분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명분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졌고 본인은 구태의연한 정치를 했습니다.

그러니 자꾸만 괴리가 생겼죠.

한국정치에서 돈이 들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한푼도 안받는다고
했죠.

한국정치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도덕적 기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같은 기준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한보사태가 뭡니까.

실제는 그렇게 돌아가면서 명분만 그렇게 내놨다는 얘기입니다.

국민들의 분노가 커진 것은 하나님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명분을 내걸어
난리를 쳤기 때문입니다.

정치9단이 아니라 1급도 안되는 얘기죠.

그렇다면 그런 명분을 내세운 뒤에 김영삼정권이 어떤 정치적 의도로 정치
활동을 해왔는가, 지금 와서 보니 통치엘리트 교체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구정치세력이 준동할 수 있는 근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죠.

실명제니, 신한국건설이니 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또 상징적으로 나온 것이 박물관 철거하고 법통을 임시정부에서 찾은 것
등이죠.

일련의 모토나 조치가 혁명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혁명을 혁명답게 추진하지 못한 결과로 이 판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새 통치엘리트를 어디서 충원했는가, 권위주의에 반대했던 지식인
교직자 언론인 이런 사람들을 주로 처음에 기용하고 나섰습니다.

아마추어를 쓴 것이죠.

김정권은 철저히 혁명의 길을 밟아 구정치행태를 척결하고 나섰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적 단계가 그런 혁명을 해야 할 때였습니까.

세계경제적 수준으로 보면 교역 11,12대국의 지위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마치 동유럽에서처럼 혁명을 하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감정적 요소가 많이
개입한 것이지 이성적 판단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현실정치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까.

"후회는 없습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결과가 뻔한데 국민세금을 축내면서 어떻게 거기 있습니까.

내 뜻이 반영은 커녕 표출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으면 모를까요"

-3당합당후 대선후보가 되기전까지 김대통령이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그때까지는 그런 내색은 없었죠.

권력을 잡은뒤 나가는 것이 사실상 혁명적이었습니다.

결국 통치엘리트교체(혁명)에 실패했고 이제 다시 관료의 힘으로 복귀하는
식으로 이번 개각이 이뤄졌습니다"

-그런 실패로 다음 정권의 부담은 크겠군요.

"다음 정권의 부담이 클 것입니다.

역대대통령중 김대통령이 취임할때만큼 호조건을 인계, 상속받은 대통령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낭비했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낭비할게 없습니다.

더한 어려움에 처할 것입니다"

-현정부가 무슨 일을 못한 겁니까.

"세계경제와 연결돼 산업사회가 돼 있는데 안의 모습은 초기 노동집약적
근대화를 하던 그때의 제도와 의식수준 그대로입니다.

이것을 빨리 지적집약적인 자본집약적인 것으로 정비작업을 해 주었어야
했습니다.

가능한대로 책임과 권리를 모두 줘 자율메카니즘으로 나가자는 것이죠.

이를 정부입장에서 보면 정부가 생산을 독려하고 장려하는 기능으로부터
서비스기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정부가 이렇게 방향을 잡으면 과거에 하지 않던 일이 많습니다.

환경 노동 농수산 사회후생 교육문제가 모두 서비스기능에 해당합니다.

정부부터 시대적 구조적 성격에 맞도록 대전환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에는 손을 못댔습니다"

노전총리는 바로 그같은 대전환을 "관료가 아닌 대통령의 권력과 지도력
으로 해야 하고 이거야말로 과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기자는 끝으로 그가 요즘 대권주자들중에 그런 과업을 수행해낼 인물을
발견했는지 물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얘기하는 사람도 없고 문제를 인식하고 표출하는
사람도 못봤습니다.

집권하고 생각하겠다면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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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출생지 경남 마산
<> 생년월일 1936년 2월 8일
<> 마산고 서울대 정치학과 뉴욕대대학원 정치학박사
<> 1966-1967 미국 암스트롱주립대 조교수
<> 1967-1988 서울대 교수
<> 1988-1990 대통령정치특보
<> 1990-1990 제15대 대통령 비서실장
<> 1990-1991 제22대 국무총리
<> 1992-1995 제14대 국회의원(민자,전국)
<> 1996 제15대 총선출마(강남갑), 명지대 정치학과 연구교수
<> 주요저서 : "한국민주주의" "사상과 실천" "유토피아" 등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