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복사꽃을 보러 갔었네 국도변, /햇빛에 얼굴이 익은 아이들이/
강둑에 앉아/물밑으로 발을 내리고 놀았네/ (중략) /복사꽃은 지고 없었네"
(복사꽃 한철 지난 여름에)

오정국씨(42)의 두번째 시집 "모래무덤" (세계사)은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시에도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다.

첫번째 시집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에서 보여준 그의 꿈찾기가 이번
시집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여정으로 형상화됐다.

회색도시를 상징하는 사막이 영화적 상상력과 결합돼 "불모성"의
이미지로 강화된 것.

"무사는 여자를 잊기 위해 사막으로/갔다 사막엔 되돌아나오는 길이
없었다"

그가 찾는 복사꽃은 어디 있을까.

아직도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득"하고 모래무덤은 "사막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어서 시인에겐 "병든 꽃나무"마저 소중하다.

그의 그리움은 "모래무덤"뒤에 언젠가는 새싹을 피울 나무 한그루가
서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는 "내 몸이 고요할수록 내 안에서 파도치는 당신, 쉴새없이
밀려와 쉴새없이 밀려가지만 단 한번도 얼굴모습이 같지 않은 당신"과 함께
"동부간선도로"를 지나 "금치산자의 가을"로 들어간다.

길은 익명의 "K"와 "사막을 건너기 위해 사막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한시절의 꽃길같은 바람길"을 걷다가 마침내 그는 한가지 깨달음에
도달한다.

삶이란 "내 몸이 꽃피고/열매 맺는 일인줄 알았더니/죽어가는 나무의/
상처를 쓰다듬는 일" (생의 다른 곳에)이라는 것을.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