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참 큰일이다.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때에 한보사태에다
노동법파문까지 겹쳐 우리경제는 이제 위기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정치권은 리더십을 상실, 오히려 짐만되는 상황이 됐다.

최근 단행된 개각은 바로 이런 경제위기의 타개에 초점이 맞춰졌다지만
그 효과 역시 단언할수 없다.

장예준 전 상공부장관(현 삼신올스테이트 생명보험 명예회장)은 이런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는 물론 국민모두가 ''착각''에서 빨리
헤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력에 비해 과포장된 우리경제의 실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자세로 다시 시작해야만 재도약을 기대할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 드라이브시대의 주역이자 상공 동자 건설장관을 두루 역임한
장 전장관을 만나 최근의 우기상황에 대한 진단과 극복방안을 들어보았다.

그는 7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서울역 앞에 있는 대우재단 빌딩 16층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며 경제현황 자료 등을 꼼꼼히 챙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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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예준 전 장관 프로필 >>

<>1924년 황해도 봉산출생
<>42년 경기고 졸업
<>49년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
<>68~71년 경제기획원 차관
<>72~73년 건설부 장관
<>73~77년 상공부 장관
<>78~79년 동력자원부 장관
<>80~82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89~95년 삼신올스테이트 생명보험 회장
<>현재 삼신올스테이트 생명 명예회장
<>부인 김순례여사와 3남2녀
<>취미 골프 영화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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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김기웅 산업1부장 ]

-나라가 몹시 혼란스럽습니다.

경제는 표류하고 국민이나 기업들은 점점 자신감을 잃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혼란의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보십니까.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요즘 누구와 만나도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길게 보면 역시 민주화 과정에서 불가피한 진통이나 대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 정치를 민주화하고 개혁하려는 시도들이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봐야 겠지요"

-문민정부의 개혁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문민정부의 개혁의지는 누구나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현실과 다소 괴리된 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컨대 문민정부는 집권직후부터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한 사정, 군에서의
하나회 정리, 청와대 개방, 언론자유확대 등 많은 개혁프로그램을
진행시켰습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나쁠게 하나도 없습니다.

뜻도 좋았고요.

한데 그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지금 국민들중 문민정부의 개혁을 찬양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원인은 그러한 모든 개혁을 이상에만 치우쳐 현실을 도외시한 채 너무
성급히 추진했던데 있다고 봅니다"

-요즘 보완론이 대두되고 있는 금융실명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금융실명제는 지하자금을 양성화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오히려
과소비 등을 부추긴 부정적면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5-6공 비자금 사건과 한보사태에서 나타났듯이 금융실명제가
완전히 성공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금융실명제만 하면 한국경제가 맑아지고 모든 게 잘 풀릴 것으로
기대했던게 잘못이라고 봅니다"

-문민정부 개혁의 실패 원인중 하나로 인사를 꼽는 사람도 많습니다.

출범때부터 "인사가 만사"라며 인사를 강조했지만 결국 패인도 그
인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요 경제장관 등을 너무 한정된 범위에서 골라 쓴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과거 정권에서 일했던 사람은 무조건 선입견을 갖고 꺼린게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했지요.

과거 사람들을 안쓰려 하다보니 가신이나 측근이 추천한 인사등 신인들을
대거 등용해야 했고 이들이 제 역할을 못한 게 문제였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책임감없이 비판만 해왔던 사람들 아닙니까.

행정경험도 많지 않고요.

이렇게 검증도 받지 않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내각을 구성하다보니
조화롭게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던 겁니다.

장관이란 자리가 그렇게 간단한 자리가 아니예요.

그 자리에 앉으면 차관할때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직업관료도 그런 정도인데 거의 아마추어인 사람들은 어떠했겠습니까"

-마침 이번에 내각이 개편됐습니다.

새 장관들에게 선배로서 당부하고 싶은게 있다면..

"당부랄게 뭐 있겠습니까.

하지만 문민정부는 장관들을 너무 자주 바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통상산업부 장관의 경우 이제 겨우 두달 남짓밖에 안되지 않았습니까.

건설교통부 장관의 경우 1년을 넘겼다며 장수장관이라고들 하던데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내 경험으론 장관직은 6개월 정도 하면 어렴풋이 감이 잡히고 완전히
방향을 잡는데는 1년 정도가 걸리더군요.

그런데 문민정부에선 너무 개각을 자주했어요.

그러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은 기대할 수 없고 각 장관들이 짧은
임기동안 뭔가 한건씩 하려 하다보니 문제가 생겨난 겁니다.

우리 경제가 지금 이 모양이된 원인중 하나도 바로 그런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예준장관"이라면 아직도 "수출 장관"이란 이미지가 강합니다.

물론 건설부장관 동자부장관등도 역임하셨지만 그래도 우리 뇌리에는
1백억달러 수출을 주도했던 상공장관으로서의 기억이 더 생생하다고
할까요.

최근 날로 확대되는 무역작자 실태를 보시면 여러가지 생각이 나실
것 같은데요.

"수출환경이 그때와는 많이 바뀌었으니까 직접 비교해 생각할 순
없겠지요.

당시엔 대통령이 매월 한차례씩 수출확대진흥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등 정부의 지원이 강했고 온 국민이 합심해 수출에 매달릴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으니까요.

게다가 그땐 개도국으로서의 혜택도 적지 않게 봤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선 OECD가입도 좀 성급하지 않았습니까.

요즘 우리상품 수출경쟁력의 약화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지난 80년대 중반에 찾아온 3저시대를 잘못 보낸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요.

그 당시 저환율 저유가 저금리등 수출환경이 크게 호전돼 국제수지가
흑자로 전환됐던 상황에서 우리가 너무 착각을 했었습니다.

그게 모두 우리가 잘하고 내실이 쌓여 그렇게된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해외여행도 자유화하는 등 흥청망청 쓰는 데만 열중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 돈으로 사회간접자본(SOC)을 충실히 확충하는 등 장기적
안목에서 경쟁력을 배양해 놓았더라면 지금 이 정도는 안됐겠지요"

-수출전선에서 소위 개미군단으로 일컬어지던 다양했던 수출품목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고임금에 인건비 비중이 높은 많은 업종들의 국내 생산기반이 무너진
탓이긴 하지만 이제 우리 수출품목이란게 반도체 전자 자동차 철강등
불과 몇개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정말 심각한 얘깁니다.

과거 종합상사를 만든 것도 사실은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수출을 돕자는
취지였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어요.

지금과 같은 수출상품 구조로는 튼튼한 수출기반이 절대 확립될수가
없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생산기반을 옮기는 것도 바로
같은 맥락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흔히들 얘기하는 고임금 고지가 고금리 고물류비 고규제 등 "5고"도
기업인들의 사업의욕을 꺾는 주요 요인이지요.

"그런 문제들이 모두 구조적인데서 비롯된 겁니다.

과거 성장위주의 패턴때문에 토지수요가 많아 땅값이 오른 것이고,
그러다 보니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고 금리도 따라 오른 거예요.

땅값 금리 물가가 오르는데 임금이라고 안오를 수 있습니까.

여기에 정부가 제때 할일을 안해 물류비가 급증하고 규제도 풀리지
않고 있는 겁니다"

-무슨 해결책은 없을까요.

"차근 차근 하나씩 문제를 풀어 나가야지요.

그런 면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있는 노동법 개정 방향은 아주 주목되는
사안입니다"

-노동법 개정과 관련한 특별한 의견이 있습니까.

"정말 어려운 문제지요.

하지만 분명한 건 정부가 작년말 국회에서 날치기로 노동법 개정안을
변칙 통과시킨 점은 잘못됐다는 겁니다.

정부로선 해를 넘기면 문제가 더 복잡해 질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나아진 것도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해를 넘기더라도 보다 인내를 갖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큽니다"

-무노동-무임금이나 정리해고제 도입등 쟁점 사항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영자층과 근로자들의 상반된 입장을 모두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원칙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절대명제입니다.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선 노동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진정으로
생각해 봐야지요.

그래서 양보할건 양보를 해야지요.

특히 근로자들에겐 이런 주문을 하고 싶습니다.

"노동생산성을 올리는 것을 전제로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약속한
생산성을 못올렸을 경우에는 임금삭감도 감수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야 임금인상의 명분도 있고 기업도 살게돼 정리해고 등의 불안에서도
벗어날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노사 모두 공생공사 한다는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노동법 문제의 뿌리도 결국은 노사가 서로 불신하는데 있는
것 아닙니까"

-한보사태를 지켜 보신 소감도 말씀해주시지요.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 문제의 핵심은 한마디로 관치금융의 폐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은행장 임면권을 정부가 쥐고 있는 현실이 낳은 비극이지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은행의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은행의 주인을 찾아준다면 결국 대기업이 소유할텐데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많아요.

가능하면 은행의 소유를 최대한 분산시키되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규제완화가 필수적입니다.

국민은행 이사장을 할때 보니까 은행에 대한 정부규제가 너무 심해요"

-정부에 계시다가 지금은 민간기업에 와보니 실제로 정부규제를 어느정도
느낍니까.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정말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마저 들때가 있어요.

보험회사에 와보니 대부분의 사장들이 재정경제원의 보험국장도 제대로
못만나요.

기껏해야 보험과장을 만나는 정도더군요.

보험회사들이 거둬들인 보험료까지 어디 어디에 쓰라고 정부가 간섭하는
실정입니다"

-문민정부들어 규제완화를 열심히 부르짖었는데 그 효과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문제는 핵심적인 사안들을 완화하지 못했다는데 있지요.

규제 얘기를 하니까 20여년전 어느 국제회의에 참석했을때 한 외국
대표가 한 말이 생각나는 군요.

그 대표가 "한국이 선진국 되려면 정부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정부는 규칙만 정해놓고 이를 어긴 기업을 엄격히 처벌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맞는 말이지요.

그게 20년전의 일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규제는 어떤 면에선
더 강화된 측면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 상공부 출신 관료들의 모임인 상우회 회장을 맡고 계시지요.

후배 관료들에게 그런 말씀도 해주십니까.

"물론이지요.

요즘은 2~3주에 한번정도씩 후배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 서울대 상대 동창회장도 맡고 있어 한달에 한번 정도씩 젊은
사람들과 모임을 갖기도 하고요"

-예나 지금이나 건강해 보이시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자주 어울리시는 분들은 누구신가요.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랄 수 있지요.

요즘도 집에 들어가면 체조를 하고 아령이나 역기도 듭니다.

물론 예전처럼 무거운 것은 못들지만.

골프는 신현확 전총리, 김정류 전대통령비서실장, 정래혁 전국회의장등과
주중에 한번정도 치고 있어요"

< 정리=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