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도입한 "총액인건비 관리제도"는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간부와 임원 임금을 동결하는 노.사간 고통분담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휴인력을 끌어안는데 따른 인건비 부담을
간부 사원 임금동결로 해소하겠다는 일종의 "바터"제인 셈이다.

삼성은 올해 그룹차원의 구조조정을 통해 약 3천명 정도의 내부
잉여인력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유휴인력이 경영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이런 경우 대량해고 등을 통해 인력조정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적 경영풍토나 노사관행에선 대량해고의 후유증은 예상외로
심각하다.

이미 명예퇴직으로 인한 40대.50대 실업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점만
봐도 그렇다.

결국 삼성은 유휴인력을 끌어안되 그만큼의 인건비 부담에 대해선 간부직
임금 동결이라는 "충격요법"을 동원한 셈이다.

여기에는 무역적자 확대나 수출경쟁력 약화에 따라 기업의 경영여건이
상당기간 호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올해 경제상황으로 봐서 현실적으로 임금을 올려주기 힘든 게 사실"
(비서실인사팀)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삼성으로선 "단기적인" 임금인상보다는 "장기적인" 고용안정심리를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는 것을 겨냥했다고 보는 게 옳은 시각이다.

삼성이 올해 임금협상 타결 이후 각 사업장별로 대대적인 생산성 향상
운동을 벌이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 회생과 고용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선 근로자들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삼성그룹의 이같은 해법은 현대 LG 대우 등 여타그룹들의 올해 임금협상
과정과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계와 노동계의 최대현안인 노동법 재개정문제가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는데다 봄철 임금 협상시기가 임박한 민감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포항제철이 임금인상 동결을 선언하고, 만도기계는 임원상여금의
10% 반납을 결정하는 등 재계는 이미 긴축 내핍경영의 분위기에 쌓여 있다.

삼성그룹의 간부 사원 임금동결은 이같은 추세를 가속화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삼성으로선 또한번 재계의 분위기를 선도하는 "총대"를 맨 셈이다.

삼성의 이같은 조치에 비판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호황을 등에업고 임금 인상을 주도한 기업"(외부)과 "잘될땐
언제고 안될 땐 고통분담이냐"(내부)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룹 안팎의 이같은 비판론을 딛고 삼성이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