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은 오는 25일 취임 4주년을 맞는다.

취임 4주년을 맞는 청와대분위기는 한마디로 착잡하다.

문민정부는 지난 4년간 개혁조치등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올리기도 했으나
최근의 사회분위기는 이같은 치적을 얘기하기 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취임초기 90%에 육박하던 지지도가 지금은 한자리로 떨어질 정도로 지난
4년은 "화려함"과 "치욕"으로 점철됐다고 볼수 있다.

출범초기 "변화와 개혁"으로 한창 인기를 누리던 문민정부가 이처럼 나락
으로 빠져든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문민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이다.

김대통령은 취임초 성역없는 부정부패척결을 내세우면서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등을 통해 상당수의 정치인및 공직자들을 물러나게 했다.

당시만해도 과거 군사정권과는 다른 문민정부의 도덕성에 국민들은 기대를
걸고 지지했던게 사실이다.

사정작업이 일부에서 물의를 빚으며 표적사정시비를 불러 일으켰으나
대다수 국민들은 문민정부의 부정부패척결 의지를 믿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장학로 청와대 제2부속실장이 뇌물수수로
구속된데 이어 최근 한보사태에서는 가신중의 가신 홍인길의원과 국회
재경위원장인 신한국당 황병태의원, 김우석내무장관등 민주계 측근들이
뇌물을 받아 구속됐다.

김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온 "문민정부의 도덕성"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국민들에게 더 큰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인사에 대한 지역편중성이다.

소위 PK지역 인사들이 정부요직및 권력주변에 자리를 잡으면서 문민정부의
인사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TK중심인사와 별로 다를게 없다는게 일반적인 인식
이다.

셋째는 김대통령의 독선적인 국정운영방식이다.

김대통령 특유의 정면돌파식 정치스타일이 과거 야당총재시절에는 지지를
받았으나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국민들에게 독선과 오만으로 비쳐졌다.

국민들에게 친숙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여기에 경제상황이 취임초기에 비해 형편없이 나빠지면서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도 심어주지 못했고 대북정책의 혼선으로 "안보대통령" 이미지 마저
구축하는데 실패, 지지도를 급속히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문민정부는 여러가지 개혁조치들을 통해
국정의 기틀을 다져왔다는 점도 간과할수는 없다.

우선 정경유착의 근절이다.

이번 한보사태에 측근들이 연루되어 다소 빛이 바랬으나 김대통령은 취임후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는데 최대의 역점을 둬왔다.

"임기중 어느 누구로부터 단 한푼의 돈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일관되게
지켜 오고 있다.

노.전비자금사건에서 보듯이 가장 큰 부정부패는 대통령이 재벌들로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받은데서 비롯되고 있다.

또 공직자 재산공개, 정치관계법개정, 금융실명제및 부동산실명제, 교육
개혁, 사법개혁, 지방자치실시 제도개혁을 통해 선진사회로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진출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은 외교성과로
꼽히고 있다.

군개혁을 통해 사조직을 없애고 노.전씨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통해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을 단행한 것도 문민정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청와대관계자들은 "문민정부의 공과를 현재의 감정적 시각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며 "각종 개혁작업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것으로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최완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