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질주를 거듭하던 검찰의 행보가 외견상 주춤해지고 있다.

한보 특혜의혹사건 수사에 착수한지 꼬박 일주일째를 맞은 3일 검찰청사
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다.

이날 소환이 확실한 것으로 점쳐졌던 이형구 전산업은행총재는 결국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다만 박석태 제일은행상무를 비롯한 은행 실무자들 몇몇이
다녀간 것이 고작이었다.

정총회장 구속이후 사진기자들이 이렇다할 사진거리를 못잡은지도 벌써
4일째가 됐다.

초동수사 단계에서 한보 전면 압수수색 정태수총회장 소환 정총회장 구속
으로 이어지는 수사의 큰 고비를 단숨에 넘어버렸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
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검찰의 잰걸음을 잡아두고 있는 것일까.

크게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검찰이 정총회장으로부터 아직까지는 시원스런 진술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다.

물론 정총회장이 초지일관의 자세를 유지하며 완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병국 중수부장의 말대로라면 "전향적으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모든
것을 털어놓지는 않고 있지만 일부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정도"에서
말문을 열고 있다.

한 수사관계자는 이에대해 "입을 좀 열거라고도 볼 수 있지만 결국 아무말도
안한 것으로 보면 맞다.

"기업하는 사람치고 명절이나 연말때 조금씩 안주는 사람 있느냐. 나도 그
정도 수준에서 후원금조로 좀 줬다"라는 식이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영양가 없는" 답변만 골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수사관계자들이 연막을 잘 피운다는 관례를 감안할 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애를 먹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이같은 분위기만으로 검찰수사가 "답보" 또는 "난항"을 겪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그보다는 조만간 닥칠 거물급 인사들의 소환에 앞서치밀한 사전준비를 하는
"정중동" 또는 "숨고르기"가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이와관련해 검찰주변에서는 검찰이 지난 2일 은행감독원으로부터 넘겨받은
한보의 대출관련 자료를 통해 비자금 향방의 감을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한보철강의 은행및 제2금융권의 실제대출금 4조2천5백억원(은행권
2조4천억원, 제2금융권 1조8천5백억원)과 이 회사 대차대조표상에 기재된
각종 금융기관 차입금 2조8천6백억원간에 1조3천9백억원의 차액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14,15대 국회 재경위(구 재무위).통산위(구 상공위)의 속기록을 통해
일부 의원이 당진 제철소의 문제점과 관련해 뒤가 켕긴 발언을 한 흔적을
찾아낸 눈치다.

이날 아침 한 검찰 고위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주 안으로 수사가 다 끝나지는 않겠지만 뭔가 나올 것"이라며 "사건
파장이 어디까지 퍼져 나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이렇게 볼 때 정치인의 소환은 당초 스케줄보다는 조금 늦은 설 직후에
이뤄질 전망이다.

그러나 그 폭발력은 가히 "A급태풍"에 버금갈 전망이다.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