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이 확산되고 있는 요즘 여의도 증권가에서 최초의 여성
정년퇴직자가 곧 나오게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증권예탁원 총무부 주무인 박옥순씨(57).

75년 7월 증권대체결제 (현 증권예탁원)에 입사해 이달말이면 21년
7개월간 몸담았던 정든 곳을 영예롭게 떠난다.

박씨의 58세 생일이든 달까지 근무할수 있다는 증권예탁원의 규정에
따라 이달말이 퇴직일자가 된 것.

경남 통영여고를 졸업한뒤 69년부터 증권거래소에서 근무한 7년을
더하면 증권계 경력은 30여년.

증권거래소의 이사급들보다도 업계 경력이 길다.

하지만 남들처럼 화려하게 임원급으로 정년퇴직하는 것은 아니다.

30년 세월을 증권계의 밑자리에서 묵묵히 일해왔지만 후회가 없다는
당찬 여성이다.

"아직 퇴직한다는 실감을 느끼지 못하겠어요.

마지막 나오는 날까지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각오입니다"

박씨는 "정년퇴직이란 걸 생각하지않고 맡은 일에 충실하다보니 이런
영광이 돌아온 것 같다"고 소감을 말한다.

사업을 하는 남편과 세딸을 둔 주부의 역할에도 충실하면서 금융사고가
잦은 증권계에서 정년퇴직이란 영광을 누리기까지는 남모를 노력도 많았다.

지금이야 전산시스템이 발달됐지만 그땐 모든게 실물주권이었다.

주식출납을 맡은 수불부에서 일할때는 실물주권을 하나씩 하나씩
세다보면 시계가 어느새 밤10시를 가리키는 경우가 허다했다.

각종 유가증권을 보관하는 금고를 맡아보던 보관부 시절에는 오해까지
받았다.

"한번은 보관중인 채권이 사라져 버렸죠. 과학수사연구소에 가서
생전 처음으로 거짓말탐지기 테스트까지 받았는걸요"

벌써 15년전의 이야기다.

여성이라는 점때문에 겪은 갈등도 많았다.

직장내 보이지않는 성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돈과 직결된 업무를 다루다
보니 직원간 불신도 상당했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박씨는 심리학을 따로 공부하기도 했다.

여가시간을 이용해 한국산업인력훈련원에서 산업카운슬러 자격증을 따
동료간 갈등을 푸는데 활용한 것.

더욱이 고졸이라는 학력때문에 늦게 입사한 동료가 먼저 승진할때는
마음고생도 심했다.

그러나 보람도 많았다.

시세가 좋아 주가가 폭등하던 83년에는 설날때도 고향에 못가고 밤새워
주식을 셌지만 고된줄을 몰랐다.

게다가 전업주부인 친구들로부터 "자녀를 키울때는 몰랐는데 아직도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부럽다"는 말을 들을땐 남편과 시댁식구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퇴직후 조그만 부업을 시작해 계속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는 박씨는 "요즘 명예퇴직 조기퇴직하면서 한창
일할 나이에 밀려 나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는 정년까지의 생존비결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세와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이 맡은 업무를 즐겁게 수행할 능력만 갖춘다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을 맺었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