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하루를 사는 현대인들은 생활속에서
감동할 일이 별로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바쁜 일상에 쫓겨 기회를
내지 못하거나 쑥스러워 그냥그냥 살아간다.

그렇다면 "현대의 마법사"로 행세하는 TV가 가만있을 리 없다.

해결사로 나선 KBS2TV "감동 깜짝쇼" (목요일 오후 8시25분~9시15분)는
"깜짝쇼"를 벌여 마음도 전하고 감동도 시켜주겠단다.

이번주에는 탤런트 강남길과 영화배우 정선경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결혼한지 11년이 된 강남길은 그동안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아내를
잠시나마 신데렐라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강남길은 구두공장에 찾아가 깜짝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아내의 발에
딱 맞는 구두를 직접 만든다.

아내를 명동 구두판매장으로 유인, 한편의 동화같은 깜짝이벤트를
연출한다.

아내는 감쪽같이 속았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공들인 정성에 감격한다.

남편이 "사랑의 편지"를 읽어주자 제작진의 기대를 배반치 않고 울먹인다.

정선경은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로 데뷔할 당시 큰 충격을 받고
반대했지만 늘 믿고 후원해준 큰언니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다.

보석세공소에 찾아가 언니를 위해 은목걸이를 땀흘려가며 만든다.

제작진은 큰언니가 사는 대전에 내려가 거짓 영화시사회를 열어 큰언니
가족을 초청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스크린속에 정선경이 언니에게 영상편지를 전한다.

언니는 오지 않겠다던 정선경이 나타나 목걸이를 걸어주자 눈물을
흘린다.

이같은 내용을 시청자들이 이젠 진부하게 느낄만도 한 "몰래 카메라"와
"TV는 사랑을 싣고"를 결합한 형식에 담아 전달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전하는 감동은 뭔가 공허하다.

우선 연출되는 상황이 너무 화려하고 번듯하다.

감동시키려는 인물의 눈물을 자아내는 방식이 작위적이고 상투적이어서
감동의 필수요건인 "진실성"을 의심케 만든다.

또 매체의 힘만 믿고 어떤 짖궂은 장난을 쳐도 카메라만 들이밀면 문제
없다는 태도도 거슬린다.

"마음은 있는데 상황이 어려운 이웃들의 작은 소망을 이뤄 준다"고
표방해 놓고 요즘 들어선 왜 연예인들만 주로 등장하는가.

연예인도 "상황이 어려운 이웃"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미지를 생명으로 하는 연예인에게 100%의 진솔함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억지일 수 있다.

제작진의 얘기는 매주 시청자의 투고가 수북히 쌓이지만 "쇼"가 될만한
소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감동 깜짝쇼"를 환상은 주되 허무만 남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있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