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전 육동창사장(67)의 경영모토이다.
30년이상 군에 몸담았던 육사장은 관직에 있던 사람이 사업을 벌이면
십중팔구 실패한다는 징크스를 깨고 창업 10여년만에 서전을 세계
유명브랜드와 어깨를 겨룰 정도로 성장시켰다.
육사장은 성공비결에 대해 "멀리 보고 확고한 목표를 세워 실천해
나가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투자가 당장 회수되길 바라지 않고 중장기 경영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시행해왔다는 얘기다.
그는 철저하게 사업계획을 세우는 등 시작부터 남달랐다.
지난 85년 안경테 사업에 뛰어든 육사장은 영세업체를 포함해 2백여개
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감안, 고품질 전략을 펴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그는 기술진 10여명을 선발, 세계적인 안경브랜드이자 협력사인
일본 이시야마사에 1년동안 연수를 보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전북 정읍에 공장을 짓고 최신 생산설비도 갖췄다.
기술진이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공장이 가동에 들어간 후에도 품질에
확신을 갖기까지 8개월동안 품질향상에 노력했다.
당시 이시야마의 기술진이 상주하며 기술지도를 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오랜 준비끝에 서전은 지난 86년8월 시판을 시작했다.
창업 1년8개월만에야 첫 상품을 선보인 것은 최고의 품질을 달성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짜여진 각본을 연기하듯 그는 수준높은 점포 3백여개와 특약점을 맺고
TV에 광고를 내는등 한차원 높은 마케팅으로 순식간에 소비자들을 사로
잡았다.
물론 철저한 애프터서비스는 브랜드의 신뢰도를 높이는데 한 몫을
했다.
스타트를 잘 끊은데 이어 질주가 이어졌다.
일본에서 수입해 쓰던 부품들을 자체 개발하고 관련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서전은 매출의 10%가까이를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자기 디자인 개발에도
본격 나섰다.
그 결과 90년대가 시작됐을땐 이미 금형에서부터 도금까지 일관생산체계를
갖추게 됐다.
육사장은 충분히 내실을 다졌다고 확신한 후 비로소 세계시장에 눈을
돌렸다.
이때 가장 넘기 어려웠던 산은 한국산 안경테는 저가라는 인식과
브랜드에 대한 낮은 인지도였다고 그는 돌이킨다.
일반 안경테로는 어렵다고 판단한 육사장은 브랜드 "코레이(Koure)"를
앞세운 패션개념의 디자인으로 공략포인트를 바꿨다.
처음의 호평이 각광으로 이어지면서 서전은 자사 브랜드로 세계시장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육사장은 지금도 매년 10여명의 기술진을 일본에 연수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연수를 다녀온 직원은 전체의 3분의1에 가까운 1백여명에
달한다.
기술자들에 대한 이같은 끊임없는 투자가 고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라는게 그의 믿음이다.
그는 또 다른 업체에도 자사 공장을 공개하고 있다.
국내업체들이 함께 커야만 한국산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 해외시장
진출이 쉬워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육사장은 "고가시장엔 외국 유명브랜드가 진치고 있는 상황이고
저가시장은 중국과 동남아업체들이 계속 잠식해들어오고 있어 국내
안경산업이 주저앉지 않으려면 함께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규칙적이고 건실한 생활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현재 재향군인회
서울지회장도 맡고 있다.
< 김용준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