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하나 값이 1억원이라면 믿을수 있을까.

그러나 실제 그런 인형이 국내에서도 팔리고 있다.

TV에서 간간이 볼수 있는 자동차의 충돌시험 장면에 등장하는 자동차
충돌시험용 인형이 그렇다.

이름은 더미(Dummy).

이 인형 가운데 가장 싼 것이 3천만원대고 비싼 것은 9천만원을 호가한다.

이 더미 값이 1억원 가까이 나가는 이유가 있다.

충돌시험에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만큼 겉에서 보듯이 간단한 인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체 각 부위에 첨단 센서가 골고루 장착되고 사람의 골격이나 관절 살집
까지 거의 같게 만들어야 제기능을 발휘하니 비쌀 수밖에 없다.

더미는 우선 개발과정부터가 독특하다.

사람의 모든 것과 똑같이 만들어야 하는 까닭에 시체가 동원된다.

머리 목 가슴 팔 다리 등 모든 부위를 정확히 조사하는 일이 시작단계다.

해부학을 전공한 전문의가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더미의 몸은 특수 비닐과 특수 우레탄, 특수 스펀지 등으로 구성돼 사람의
골격을 갖춰가게 된다.

또 몸체 곳곳에 센서가 부착된다.

충돌실험때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더미는 종류도 다양하다.

아기 더미부터 성인 더미, 노인 더미까지 있다.

겉모양만 그런게 아니고 내부 골격까지 나이대로 조절돼 있다.

요즘들어서는 임산부 더미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임산부 더미 안에는 태아까지 들어있어 차량 충돌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까지
분석하고 있다.

성인 더미는 크기에 따라 5% 더미와 50% 더미, 95% 더미 세가지로 나뉜다.

예컨대 95% 더미는 표본조사 대상인 성인가운데 신체 크기가 상위 5% 안에
드는 사람들의 평균신체 크기를 나타낸다.

더미의 개발 역사는 곧 "더미를 인체의 구조와 어느정도 가깝게 만드느냐
하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이라 할수 있다.

더미가 처음 등장한 것은 2차대전이 한창인 1940년대초.

탱크나 제트기를 만들때 안전도를 측정하기 위해 인체와 비슷한 인형을
만들어 태운 것이 시초다.

그러다가 자동차 개발이 붐을 이룬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에 쓰이는 인형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더미의 개발은 미국이 주도해 현재 미국의 더미 전문생산업체인 FTSS사가
세계 대부분 업체에 더미를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한국지사인 FTSS코리아의 김성인 사장은 "현재 더미의 개발단계는
인체의 75% 수준에 근접했다"고 말한다.

국내에서도 최근들어 더미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자동차업체에 더미를 공급하는 김사장은 "특히 작년에는
세계에서 더미 수요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현대 기아 대우 쌍용 등 대부분의 업체들은 자체적인 충돌실험공간을 갖추고
더미를 이용한 안전도 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차량실험부의 한강희 팀장은 "신차 하나를 개발할때 보통 50여회
이상의 충돌실험을 거친다"며 "안전이 차량개발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충돌실험의 빈도와 이에 따른 더미의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 정종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