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과 은행의 동거"

요즈음 미국에선 슈퍼체인과 은행들의 짝짓기가 대유행이다.

이미 동거생활에 들어간 슈퍼마켓과 은행점포가 4천여개를 헤아린다.

최근들어선 하루에도 10여쌍씩 슈퍼마켓은행 커플들이 탄생한다.

서로 마음에 맞고 장래성있어 보이는 파트너를 골라잡기 위한 헌팅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여러 파트너와 동시에 손잡는 복수동거도 늘고 있다.

미국에선 금융이나 유통의 자체 리스트럭처링은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제 업종을 뛰어넘는 복합마케팅을 통해 새 고객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와 은행 커플은 소비자들의 축복속에 창창한 앞날을 기약하고 있다.

뉴저지주 런넴드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크리스 블러드씨는
몇년전만해도 점심시간이 지겨웠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점심시간에 식사하랴 은행에 적금이나 각종 공과금
납부하러 다니랴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었다.

그랬던 블러드씨가 지난달부턴 점심시간에 느긋하게 커피를 마실수 있게
됐다.

회사바로 옆에 있는 에크미 슈퍼마켓 안에 멜론은행지점이 들어서면서
점심시간 스케줄이 바뀐 것이다.

슈퍼마켓의 패스트푸드로 간단히 점심을 떼우고 슈퍼 매장 한쪽에 자리잡은
은행창구에 들리고 나도 커피타임이 남는다.

점심때 단1분이 아쉬운 블러드씨 같은 셀러리맨들 덕분에 "슈퍼마켓뱅킹"이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마켓은행이 인기가 높아질수록 전통적인 은행단독점포는 사양길을
재촉하고 있다.

특히, 주택가 밀집지역에서 가정주부들을 주고객으로 영업을 해온 일반
은행점포들은 슈퍼마켓뱅킹의 도전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슈퍼는 은행고객을, 은행은 수퍼고객을 서로 끌어들일수 있고 고객은 한곳
에서 두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수 있으니 일거삼득인 셈이다.

단순히 장소만 같이 쓰는 것이 아니다.

은행카드와 슈퍼마켓 크레디트카드를 합쳐, 고객이 카드 한개로 쇼핑과
은행 일을 동시에 볼수 있게 됐다.

멜론은행과 에크미 슈퍼체인의 경우 동거이후 점포마다 일주일에 평균
3천명정도 고객이 늘었다.

슈퍼마켓으로선 구매력이 보장된 잠재고객 확보에 결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 소매업협회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슈퍼마켓뱅킹"은 27%에
달하는 경이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미국에 슈퍼와 은행의 동거시대가 열린 것은 지난 86년.

처음엔 단순한 현금입출금 서비스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자질구레한 각종
공과금납부에서부터 융자서비스까지 일반은행점포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금융마케팅 전문가들 가운데는 다소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슈퍼에 청과물을 사러온 주부들이 은행의 적금고객으로 이어질 것으로
바라는 것은 과잉기대라는 것.

결국 기존은행지점 고객이 슈퍼마켓은행으로 옮겨갔을 뿐이라는 분석이다.

일부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은행들은 슈퍼와 손잡는데 혈안이 돼있다.

아메리카은행(뱅크오브아메리카)은 최근 시카고 최대의 슈퍼체인인 쥬얼
오스코와 손잡고 한꺼번에 7백50개의 슈퍼마켓은행을 열 계획이다.

파트너 유치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펜실베니아지역의 최대 상업은행인 델라웨어스토어스은행과 랭킹 5위인
멜론은행의 경쟁은 슈퍼마켓헌팅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두탈취를 노리는 멜론은행은 슈퍼마켓뱅킹으로 승부를 건다는 전략으로
지역 독립슈퍼마켓들을 축으로 네트웍을 구성하고 맹추격중이다.

이에 질새라 델라웨어스토어스은행은 최근 제나디스패밀리마켓과 손잡고
일시에 20개의 슈퍼마켓뱅킹을 개설했다.

제나디의 대변인 데이비드 제나디씨는 "슈퍼마켓으로선 고객이 원하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할수 있게 되므로 은행의 제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코어스테이트은행의 지점개발부서 부팀장인 개리 레이너트씨는 "은행
으로서도 고객편의에 초점을 맞춰 슈퍼와 동거하는 것"이라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

뉴욕소재 CBS마케팅 컨설팅의 조셉 카터사장은 "유통과 금융의 만남은
앞으로 더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 이동우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