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페루 경제가 "게릴라 인질극" 쇼크에 휩싸였다.

페루 극좌무장게릴라의 일본 대사관 인질사건 발생 이튿날인 18일 리마의
볼사주식거래소에는 개장과 동시에 주식의 "대량투매" 사태가 벌어졌다.

개장 2시간여만에 볼사종합지수는 3.58%(49.95포인트), 볼사15종목 지수는
4.47%(90.87포인트)나 무너져 내렸다.

단 2개종목만 보합세를 유지한채 나머지 모든 종목이 일제히 내림세를
보였다.

단 2-3시간만에 싯가의 10%나 폭락한 주식들도 적지 않았다.

볼사거래소로서는 3년만에 최악의 날이었다.

이렇게 되자 오전 11시10분(현지시간), 페루 증권당국은 서둘러 주식거래를
중단해 버렸다.

증권 관계자들은 "인질이 모두 석방될 때까지는 주식거래를 재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90년이후 성장일변도를 달려온페루경제가 뜻밖의 암초에 걸린 것이다.

페루의 올해 예상 경제성장율은 4%.

재정및 경상적자 감축을 위한 의도적인 긴축정책으로 성장율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경제는 여전히 안정권에 들어 있다.

지난 94년에는 무려 경제가 13%나 성장, 그해 "세계최고속 성장국"이란
타이틀까지 얻었었다.

지난 90년 집권이후 자유시장으로의 경제개혁을 강력히 추진한 후지모리
대통령의 덕분이었다.

그는 특히 모국이나 다름없는 일본을 여섯차례나 방문해 30억달러 이상의
원조를 이끌어 내는등 돈을 페루로 끌어들이는데 전력했다.

그러나 좌익게릴라들에게는 이런 자유시장경제 개혁이 못마땅하게 비쳐졌다.

후지모리의 경제개혁이 성공할수록 사회주의 꿈은 더욱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습격의 대상을 일본대사관으로 택한 것도 후지모리 경제개혁과 가장
강력한 후원자인 일본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좌파 게릴라들의 의도대로 이번 사건이 페루경제에 타격을 가할 수 있을까.

불안해진 세계 각국의 투자자들이 페루를 대거 이탈하면서 제2의 멕시코
경제붕괴 사태로 빠져드는게 최악의 시나리오다.

실제 세계각국의 투자자문및 증권사에는 "페루투자가 안전하냐"는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이에대해 런던HSBC사의 남미투자 전략가 온다인 스멀더스는 "기우"라고
잘라 말한다.

"페루경제도 내년도에는 4%대의 안정성장을 보일것"이라며 "이번 게릴라
인질극같은 돌발사태가 연거푸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페루경제는 문제없다"고
말했다.

단기간내 대거 자금이탈사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번 사건을 단지 일시적
돌발사태로 봐넘길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이번 인질극은 페루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상징하는 사건이란 점이다.

시장개혁은 전반적인 경제상황을 크게 호전시켰지만 부자와 빈자간 거리를
더욱 별려 놓는 부작용을 낳았다.

6년여간 개혁속에서 누적된 하류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사회가
불안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개혁은 벽에 부딪친다.

경제성장도 "스톱"하게 된다.

메릴린치가 최근 페루증시에 대한 평가를 "우량"에서 "보통"으로 낮춘 것도
이 때문이다.

"내년도 남미의 투자우량국은 페루가 아니라 멕시코와 브라질"이라고
메릴린치는 설명한다.

메릴린치의 남미투자전략가 에드 카브레라는 "기관투자자들이 다른 남미
국가로 투자발걸음을 옮기면서 다른 투자자들도 페루투자에 대해 신중한
자세로 돌아섰다.

특별한 경제호전 계기가 없는한 투자심리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모건스탠리의 남미이코노미스트 카를로스 자나다는 이번 사태의 경제적
여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번사태를 계기로 투자자들은 "역시 신흥공업국은 안전하지 못한 투자처"
라는 점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결국 대페루투자심리 위축이란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리란 얘기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