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에서 성표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장정일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1월29일 오후 서울 YMCA 회관에서 열린 "시민논단"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문학의 사회적 책임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문학속의 성표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한 이날 토론회에서
권장희씨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정책실장)는 "노골적인 성묘사에 치중한
이 소설은 여고생의 비정상적 섹스행각 등 변태성행위들로 전체의 80%를
도배했다"며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문학인에게 맡길수 있지만 도서로
유통된 뒤부터는 소비자 문제이므로 "성의 상품화"는 제재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영옥씨 (문학평론가.숙명여대 강사)는 "장정일에 대한 제재는
우리사회가 여전히 터무니없는 규범의 틀과 보수주의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 예다.

그러나 남성중심 사고로 인해 소설속의 여성들이 부차적인 존재로
그려진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영준씨(문학평론가.민음사 주간)는 "소설속의 묘사는 우리사회의 병든
모습에 대한 상징적 야유다.

원색적인 표현을 과감히 도입한 김지하 시 "오적"이 사회에 대한 통렬한
질타를 담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우리문학의 미개척지를 열어젖힌
문제작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음란한 구절의 유무만이 판단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며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금지가 아니라 판단력이다"라고 강조했다.

송경아씨 (소설가)는 "매체에 대한 모든 규제는 억압이다.

"나쁘거나 위험할 것같은 정보"들을 입막음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은
판자촌이 보기 싫다고 모조리 철거하자는 구시대적 발상과 같다"고 창작의
자유를 옹호했다.

박태상씨 (방송대 국문과 교수)는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작가의
이념이나 가치관 확립여부에 의해 결정되므로 성표현 등 미시적인 것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결국 이날 토론회에서는 "창작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