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아버지가 아들을 살린다"

명예퇴직과 감원바람으로 휘청대는 가장, 가정과 사회에서 협공당하는
"고개숙인 남자들".

이른바 "아버지 신드롬"이 한창인 올겨울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잇따라 개봉된다.

유괴된 아들을 찾는 남자의 집념을 다룬 "랜섬"(론 하워드 감독)과 억울하게
희생된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영혼으로 환생한 아버지 얘기인 "크로우2"
(팀 포프 감독)가 그것.

두 영화의 캐릭터는 모두 "강한 아버지"다.

이들은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 험한 세상을 이기는 방법을 보여준다.

부자간의 정을 그린 영화는 그동안에도 많았다.

숀 코너리와 해리슨 포드주연의 "최후의 성전"이나 아일랜드 비극을 소재로
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아들을 구하는 "이연걸의
영웅" 등 액션영화부터 낚시를 통해 두 아들과 정을 나누는 "흐르는 강물
처럼", 농아아들을 위해 수화콘서트를 마련하는 아버지의 얘기인 "홀랜드
오퍼스"까지.

그러나 이번처럼 강력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작품은 드물었다.

"랜섬"과 "크로우2"는 억만장자와 가난한 소시민, 현실과 환상이라는 차이
에도 불구하고 자식앞에는 빈부격차나 영육의 구별이 따로 없음을 확인시켜
준다.

"랜섬"은 항공사사장 톰 멀른(멜 깁슨)이 유괴범들로부터 아들을 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평화롭던 가정에 날아든 비보.

범인들은 몸값 200만달러를 요구한다.

수사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돈을 준비해 약속장소로 나가는 톰.

범인중 1명이 매복중이던 특전반에 의해 사살되자 사태는 걷잡을수 없이
악화된다.

두번째 접선장소로 가던 톰은 생방송을 통해 몸값만큼 현상금을 걸겠다고
선언한다.

아내는 "항공사를 위해선 거액의 뇌물도 불사하면서 애 몸값을 안주려
하느냐"며 절규한다.

아내를 달래면서 현상금을 2배로 올린 톰은 죽기 살기로 정면대결에 나선다.

결국 주범은 동료유괴범들을 해치우고 영웅으로 둔갑해 현상금을 챙기려
든다.

돈을 주려는 순간 그의 목소리를 알아본 아들에 의해 상황은 반전된다.

총상을 입고 범인과 사투를 벌이는 톰의 모습이 흑백화면으로 전환되는
마지막 장면은 "피보다 진한" 혈육의 정을 대변한다.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 5개부문상을 휩쓴 멜 깁슨의 강성 이미지가
영화에 힘을 더한다.

뱅상 페레 주연의 "크로우2"는 이보다 더 직설적이다.

"천사들의 도시"를 부제로 한 이 작품은 아메리칸드림의 상징공간인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죽어서도 아들을 구하는 영혼의 진혼곡.

세기말적 징후에 대한 경고도 담고 있다.

"죽은자의 날"로 불리는 축제일 저녁, 젊은 아버지 애쉬(뱅상 페레)와
아들이 갱단의 범죄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처참하게 살해된다.

물속에 수장된 아버지의 영혼은 아들곁을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다 "부활의
새"인 까마귀의 인도로 환생한다.

밧줄을 끊고 물위로 솟구쳐 오른 그는 범인들을 끝까지 추적해 응징한다.

꽃같은 생명을 앗아간 어둠의 세력에 맞서 자신의 영혼을 불사르는 젊은
아버지의 "살신"이 컬트적인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물과 안개, 강렬한 색감이 이를 상징적으로 떠받친다.

시공을 뛰어넘는 부정의 힘은 날기도 전에 스러져간 "어린 천사"의 날개를
펼쳐 영원한 평화의 나라로 올려 보낸다.

주인공들은 영화를 통해 우리시대의 수많은 아버지들에게 말한다.

"어깨를 펴고 세상과 당당히 맞서 이겨라.

진정한 힘은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