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북부 상업도시 밀라노.패션 메카로 잘 알려진 이곳은 해마다
초겨울이면 국제적인 영화도시로 변신한다.

제 63회 밀라노필름마켓(MIFED)이 지난 10월27일~11월1일 시내
중심부에 있는 피에라 밀라노에서 열렸다.

이 마켓은 각국 영화사들이 촬영중이거나 완성된 작품을 들고 나와
바이어들과 상담을 벌이는 세계영화도매시장.

여기서 판권을 구입한 회사는 자국내 배급권과 비디오등 2차판권의
독점권을 갖는다.

이번 견본시에는 전세계 260개 회사에서 404편을 출품, 열띤 판매경쟁을
벌였다.

참가작은 미국이 135개사 182편으로 가장 많았고, 영국이 34사에 56편,
이탈리아가 28사 30편순.

우리나라에선 모인그룹(대표 정태진)이 단독 부스를 열고 "은행나무침대"
(신씨네 제작),

"키드캅"(씨네월드), "깡패수업"(우노필름)등을 내놨으며,
영구아트무비(대표 심형래)가 미국합작사인 MFI(대표 이용호)와 공동부스를
설치하고 "아미크론"등을 선보였다.

전시장3층 출입구 정면에 자리잡은 모인그룹 부스에는 기간 내내
바이어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모인그룹은 이번 마켓에서 프랑스와 덴마크등 4개국 영화사와
"은행나무침대" 판매에 합의했으며(총30만달러), 영국 러시아등 7개국
8개사와도 10만달러 상당의 "키드캅" 수출상담을 벌였다.

촬영이 끝나지 않은 "깡패수업"의 경우에도 동남아 9개국과 비디오판권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이 회사는 또 왕가위감독의 "아비정전"등 40여편의 홍콩영화를 50만달러에
팔아 국제적인 중개무역 능력을 보여줬다.

별관 중앙에 마련된 영구아트무비.

MFI부스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해외판 "파워킹"인 "아미크론"의
구매상담을 벌였다.

행사기간중 가계약상태로 이뤄진 판매액은 40만달러.

한편 현대 삼성 대우 선경등 국내 영상대기업과 미라신코리아 하늘영상
성림필름등 30여개 수입사들도 이번 마켓에 참가,괜찮은 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개막 첫날인 27일 아침 행사장 본관 빌딩은 일찍부터 등록을 마친
3,000여명의 바이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은 26개 시사실에서 하루 6회씩 쏟아져 나오는 영화를 훑어보며
"될성부른 떡잎"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줄잡아 하루 150편이 상영되는 터라 한곳에 오래 머물수도 없는 노릇.

몇분동안 영화가 돌아가는 품세를 가늠하며 값을 따져본 뒤 계산이
안맞으면 다음 시사실로 옮겨 탐색전을 계속했다.

영화판권 구입에는 노련한 협상력과 발빠른 대응전략등이 한꺼번에
요구된다.

첫날 오후 1시30분,2층 22번 시사실에서는 토스트로 점심을 때운
40여명의 수입업자들이 숨을 죽인 채 미국.홍콩 합작영화 "핏빛
달"을 지켜보고 있었다.

5분쯤 영화가 진행되자 뒷자리에 앉았던 유성필름의 김용노대표가
옆에 있던 직원에게 뭔가를 지시했고 직원은 곧바로 시사실을 빠져나갔다.

김대표가 영화내용을 끝까지 "확인"하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나왔을
때 그 직원은 이미 중국계 전문딜러의 협조를 얻어 제작사와 판권협상을
마무리한 상태였다.

결국 이 영화는 유성필름에 "입도선매"됐고 한 발 늦은 국내사들은
유성측을 상대로 비디오판권 협상을 제의할 수밖에 없었다.

필름마켓이 열리고 있는 동안 밀라노에는 안개가 자주 끼었으나, 시내를
관통하는 전차와 버스안에까지 지구촌 영화축제를 기념하는 포스터가
즐비하게 나붙어 행사 열기를 더했다.

< 밀라노=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