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시대가 다시 올까.

엔화가치가 하룻만에 2엔이상 치솟는 수직상승을 보이자 "엔고재연"
가능성에 외환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엔고재연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번 엔화급등의 원인은 엔저가 일본과 미국, 전세계 경제에 불안을
미칠 위험수위까지 내려왔다는 우려다.

경제불안을 우려한 조정인만큼 또 다른 불안요인인 "엔고"로는 가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번 엔화급등의 점화제는 "엔화 하락세는 이제 끝났다"는 사카키바라
에이즈케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의 발언이었다.

국제외환시장에서 사카키바라 국장은"미스터 엔"으로 통한다.

그만큼 엔.달러환율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

통상 이런 발언이 나온뒤에 정부는 부인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본 관리들의 지지발언이 잇따랐다.

경제기획청은 "엔화가 너무 낮게 평가돼 있다"며 엔급등에 기름을
부었다.

"일본과 선진7개국(G7)은 불안을 원치 않는다"는 일본중앙은행 총재의
애매모호한 발언도 곁들여졌다.

이번 사태를 일본정부의 "엔저 정책 포기"신호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도쿄시장에서는 1백14엔대를 맴돌던 엔화가 즉각
1백12엔까지 수직상승(달러급락)했다.

뒤이어 열린 런던과 뉴욕시장에서는 1백11엔대까지 치솟았다.

일본관리들의 전격적인 "엔저정책 포기"시사 발언에는 각국의 비난압력이
큰몫을 했다.

그동안 일본당국에는 "힘든 구조개혁 없이 엔저라는 아편으로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얄팍한 술수를 쓰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엔화가 하락하면 일본제품의 수출가격은 떨어진다.

자연히 수출이 늘어나 경제가 회복되는 반짝효과를 누릴수 있다.

대신 나머지 교역상대국은 "무역적자 급증"이라는 고통을 겪게된다.

한국도 대표적인 피해자다.

일본의 무역흑자증가가 재연되면 통상갈등이 격화될테고 엔화도 다시
상승압력을 받을수밖에 없다.

그럴바에야 이쯤에서 엔저정책을 그만두는게 낫겠다는게 일본정부의
속셈인듯 하다.

물가상승 압력도 일본의 엔저정책 포기를 재촉한 요인이다.

내년부터 일본의소비세율은 현행 3%에서 5%로 인상된다.

여기에 엔화하락까지 겹치면 수입가 상승으로 물가상승 압력은 가중된다.

엔화환율이 1백10엔대만되도 일본의 올해 소비자물가는 전년대비
1.5%포인트 오른다는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1백14엔대의 환율이 물가에 얼마나 위협요인인지 짐작할수 있다.

미국으로서도 이제 더이상의 엔저(달러고)는 용인할수 없는 시점에
왔다.

엔화가 달러당 1백14엔대까지 떨어지자 대일무역적자가 다시 급증하면서
미국을 경기침체로 빠뜨릴 것이란 주장이 대두됐다.

"달러고"신봉자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부장관의 교체설도 엔상승
요인이다.

외환시장이 술렁일때마다 "강한 달러는 미국의 국익에 부합된다"는
말로 불안을 잠재웠던 루빈장관이 달러화가 하룻만에 2엔이나 폭락했는데도
입을 닫고 있었다는 점도 미국의 달러고정책 수정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엔화상승세는 엔.달러 최적환율로 일컬어지는 1백10엔대에서
"스톱"할수밖에 없다.

우선 미.일양국 금리차가 엔고시대를 가로막는 가장 큰장애다.

일본의 금리(재할인율)은 불과 0.5%다.

반면 미국의 금리는 5%다.

따라서 달러쪽으로 투자자금이 쏠리기 마련이다.

미.일 양국의 환율정책이 이런 물꼬를 막는데는 한계가 있다.

일본의 취약한 경제사정도 엔화상승세에 브레이크를 걸고있다.

"엔고는 회생기로에 서있는 일본경제를 다시 고꾸라뜨릴 것이다"
(미노스웨스트 은행의 존 비어링 수석딜러)

이런점에서 7일 임명된 미쓰즈카 히로시 일본대장상의 역할은 막중하다.

미쓰즈카 대장상이 엔저라는 아편대신 경제구조 개혁을 경제의 근본
치료약으로 들고 나올경우 엔.달러 환율은 안정을 누릴수 있다.

이날 미쓰즈카대장상은 임명후 첫 기자회견에서 "환율은 자유시장의
경제상황에 맞춰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일본이 인위적인 엔저정책을 버린다면 엔화는 1백10엔대에서
안정될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