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맑고 밝은"정신으로 살기 힘든 세상인가.

사회 곳곳에서 각계 각층의 비리가 잇달아 터져나오면서 시민들이 허탈감에
분노마저 잊었다.

특히 "뽀빠이"로 더 잘 알려진 이상롱씨가 심장병어린이 돕기를 앞세워
자기 이익을 챙겼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본인은 보도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국민들 입에선
"뽀빠이마저도..."란 한숨섞인 소리가 나오고 있다.

불철주야 국토방위에 애를 쓰는 국군장병을 위문하는 정겨운 아저씨로,
불우한 아동을 돕는 어린이의 다정한 벗으로 알려진 유명연예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국민들은 조직폭력배가 횡행하고 일부 청소년이 비뚤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현실에서 그동안 이씨의 "선행"은 사회를 올바르게 계도하고 이끌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러나 사정이야 어찌됐던 지금 그 믿음이 여지없이 깨진 것이다.

이씨에게 모아졌던 돈의 성격을 우리는 기억한다.

불우어린이들의 심장수술에 쓰여지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에서 대부분
익명으로 전해졌던 돈들이다.

그러나 이 돈들이 제대로 쓰여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일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극심한 교통난을 참아가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박봉에 허덕이면서도
조금씩이나마 남을 돕고 사는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국민들은 "이제
정녕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냐"고 반문한다.

각종 미디어매체에서, 공개행사에서 이들을 보고 믿고 의지했던 많은
국민들의 마음은 이제 아프게 찢어진 상태다.

최근 정부가 사회지도층인사를 대상으로 비리수사에 착수하자 국민들은
마음을 더욱 졸이고 있다.

이번에는 얼마나 믿기 어렵고 황당한 소식을 새로 접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런 국민들의 심정을 사회지도층인사들은 헤아리고 있을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