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와 자주 골프장에서 만나는 사람 가운데 J가 있다.

그는 한 때 변호사이신 부친의 권유로 고시공부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아 일찍이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그덕에 남들보다 일찍 골프를 알았고 또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지게
되어 큰 회사의 골프채수입업무를 담당했었단다.

그러다가 지금은 독립하여 사장이 됐다.

그런데 명함에는 과장이라 적어 가지고 다닌다.

사장 아니면 회장이라 불리기를 원하는 보통내기들과는 어쩐지 달라
보여 그를 만나면 자주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러는 가운데 그가 한국의 골프계에 족적을 남기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임도 알았다.

K기자는 J의 스윙을 보고 로버트스윙이라고 표현한다.

필자도 아마추어스윙 가운데서 가장 완벽한 스윙을 구사하는 사라이라고
거침없이 그에 대한 칭찬을 한다.

실제로 그는 골프공을 제조하는 회사에서 타구시험을 할때 사용되고
있는 로버트가 볼을 치는 것을 보고 스윙을 익혔다고 했다.

그는 드라이비비거리도 우리들보다 30여야드는 더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퍼팅실력이 좋지 않아 동반자들을 즐겁게
해 주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와 골프를 치는 필자는 저 친구가 머지 않아 우리를 혼쭐나게
할 것이라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어느날 68을 기록함으로써 필자를 즐겁게 해주었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그는 다시 99를 쳤다.

똑같은 골프장에서 최고치보다 무려 31타를 더 친 것이다.

첫 홀에서 티샷이 오비를 내더니 그만 그는 리듬을 잃어 버렸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골프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골프를 그만 두고 싶지 않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20일 동안 골프를 홀대했더니 골프가 자기에게 질투하는것
같다고 덧 붙이는 것이었다.

지난주 JPGA에서는 브리지스톤오픈이 열렸다.

그런데 점보오자키가 예선에서 탈락했다.

점보가 예선에서 탈락하기는 1993년 던롭오픈이후 3년만의 일이란다.

특히 그는 최근 프로통산 100승에서 단 1승만을 남겨 놓고 있다.

그래서 그를 추종하는 많은 일본 골퍼들로부터 잔뜩 기대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팬들의 예상과 달리 자신의 스폰서회사가 주최하는 메인이벤트에서
예선탈락함으로써 크게 수모를 당한 것이다.

필자는 점보의 예선탈락소식을 접하면서 아마추어로서 68을 쳤다가
99를 친 J의 심정도 3년만에 예선탈락한 점보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둘은 똑같이 푸념했을 것으로 여겼다.

"골프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야"라고.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