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250GTO는 지난 주에 소개되었던 이탈리아의 치시탈리아와 함께
이탈리아의 카디자이너 피닌파리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차량 앞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뒤쪽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곡면은 우아함의
극치로 평가받고 있다.

페라리의 기술과 피닌파리나의 디자인이 만나서 하나의 예술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 54년 페라리 250GTO의 전신인 250GT가 나오기 전까지 페라리사는
수작업으로 만드는 차마다 모양을 조금씩 바꾸어 가면서 1년에 35대 정도
밖에 차를 만들지 못하였다.

그러나 피닌파리나와 손을 잡고부터는 안정된 차체 디자인과 제작에 힘입어
연간 670여대 정도를 생산하는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250GT 시리즈는 64년까지 총 2,550여대가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페라리와 피닌파리나의 명성을 있게한 차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페라리와 피닌파리나는 현재의 슈퍼스포츠카 페라리 F50을 개발하기
까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해온 것이다.

250GTO의 개발은 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동차 발전의 원동력은 자동차 경주에서 시작되었다고들 하지만 50년대는
유난히 자동차 경주가 인기를 얻어 많은 회사들이 레이스에 참여하였다.

특히 성능만을 앞세운 전문 레이싱카보다는 일반 양산차 경주가 인기를
얻었는데 이에 그랜드 투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차가 등장하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오픈 2인승 스포츠카에서 안락성을 가미한 쿠페 스타일의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GT라는 라벨이 붙여진 차들이 이에 속한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된 250GT는 자동차 경주에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 페라리사는 더욱 성능이 우수한 차를 만들었다.

축간 거리(WHEEL BASE)를 줄임으로써 조종성능을 높이고 알루미늄을 사용한
차체를 만들어 "베리네타"라는 모델을 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차는 뛰어난 핸들링 성능 뿐만아니라 당시 레이싱카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테스타로사"라는 엔진을 실었다.

테스타로사는 실린더 헤드가 붉은 색이어서 "붉은 머리"라는 뜻을 갖고
있었는데 모양 만큼이나 강력한 파워를 발휘하여 당시 레이싱카 경주에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60년대 들어 자동차경주에서 많은 사고로 규제가 강화되면서 62년
부터는 그랜드 투어로서 월드챔피언을 가리게 되었고 이에 맞추어 250GTO
라는 모델을 개발하게 되었다.

GTO의 O는 이탈리아어로 새로운 규칙에 맞추어 만들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GTO"는 캄테일이라는 독특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이것은 차체 곡면이 차량 뒷부분으로 가면서 유선형으로 흐르다가 갑자기
칼로 자르듯이 잘라진 형태로 공기역학적으로 차량을 앞으로 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차량의 앞부분을 최대한 낮춤으로써 최고시속 260km의 성능을 갖추어
당시 3번의 월드챔피언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명성과 우아한 보디라인 때문에 이 차는 90년도 경매시장에서
640만파운드, 한화로 약 6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거래되어 가장
비싼 중고차의 하나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김상권 < 현대자 승용제품개발2연 상무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