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와 독특한 마오리족문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나라 뉴질랜드.

지난 70년대이전까지만해도 대부분 "키위"로 불린 뉴질랜드인들은 천혜의
자연이 제공하는 안락함속에서 달콤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뉴질랜드가 이러한 환상에서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초반.

저성장 고물가에다 늘어나는 재정적자로 "키위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지난 70년대후반부터 80년대말까지 연평균 13%에 달하는 인플레와
마이너스성장 지속으로 91년 92년 2년 연속 1%대의 낮은 경제성장률을
면치못했다.

키위경제가 이지경에까지 이른데는 무엇보다 국내산업보호를 위한
폐쇄적인 경제구조와 규제일변도의 정부정책에 원인이 있었다.

또한 스웨덴등 스칸디나비아 3개국과 맞먹는 후생복지정책은 정부주머니를
거덜나게 했을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놀고 먹는 게으름뱅이로 만들어버렸다.

거의 회복이 불가능한것처럼 보였던 뉴질랜드경제가 최근 2년간 4~6%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같은 뉴질랜드경제의 드라마틱한 역전극은 지난 13년간 일관성있게
추진돼온 개방과 자유화로 특징지어지는 경제개혁프로그램 덕이었다.

성공적인 경제개혁덕분에 91년 11%까지 치솟던 실업률이 현재 그
절반수준인 6.2%로 뚝 떨어졌다.

10년전 최고 15%를 웃돌던 인플레율도 2%에 머물고 있다.

뉴질랜드 경제개혁성과에 대한 세계경제전문가와 경제기관의 평가도
상당히 후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올초 세계적인 경제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뉴질랜드가 조사대상 20개국가중 경제적으로
가장 개방된 나라로 평가했다.

또한 스위스 국제경영전략연구소 (IMD)는 지난해 뉴질랜드의 경쟁력이
조사대상 48개국중 8위를 차지했으며 정부의 생산성은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3위에 랭크되었다고 발표했다.

인구 340만명에 한반도보다 약간 큰 외따로 떨어진 이 섬나라가
세계경제무대로의 화려한 데뷔를 가능케한 경제개혁은 어떤것인가.

돈 브래시 뉴질랜드 중앙은행총재는 지난 6월 런던에서 열린 한
세미나석상에서 경제개혁 분야를 크게 <>자유시장메커니즘 도입
<>행정조직개편 <>기업화 민영화등으로 나누었다.

금융 무역 노동시장에서 국내산업보호라는 미명아래 지속돼오던 정부의
통제와 간섭이 경제개혁과정에서 일소되고 모든것을 자유시장경쟁체제에
맡겼다.

은행들은 정부의 대출규제로부터 해방되었을뿐아니라 중앙은행의
증거금제도에서도 자유로워졌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올 1월에는 일반은행에 대한 획기적인 감사제도를
도입했다.

은행의 자율성이 대폭 늘어난 반면 안전장치가 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중앙은행은 정치적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반면 여하한 경우에도
인플레율을 0~2%대에 잡아놓아야한다는 구체적인 임무가 부여됐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중앙은행총재는 당장 옷을 벗어야한다.

100여년전 영국에 냉장육을 처녀수출하면서 시작된 무역도 정부의 철저한
통제아래 있긴 마찬가지였다.

이에대한 수술도 진행됐다.

수입허가제도가 1992년에 폐지된것을 계기로 관세도 대폭 줄어들었다.

오는 2000년에는 거의 모든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5%로 하향조정될
전망이다.

이러한 획기적인 조치에 힘입어 높게 쌓아올린 담장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뉴질랜드의 "아시아화"도 속도가 붙기시작했다.

실제로 전체수출에서 차지하는 대유럽수출비중은 지난 66년 62%이던것이
94년 15%로 크게 떨어졌다.

반면 전체 교역량의 50%가 아시아와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특히 한국은 영국을 제치고 키위상품의 4번째 큰 시장으로 떠올랐다.

또한 뉴질랜드는 산업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던 농.축.임업에 대한
정부보조금을 전부 삭감해버렸다.

농가소득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정부보조금지급이 중단됐을때 농민들의
반응은 당혹 그자체였다.

지금까지 따뜻한 온실속에서 정부보조금을 받아오던 농민들이 어느날
갑자기 찬바람이 부는 들판으로 내몰리게 됐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보조금없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농기술 현대화등 다양한
자구책을 강구한 결과 현재 과거 10년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농민은
아무도 없다.

이들은 보조금이야 말로 파멸의 씨앗이라는 것을 뼈속깊이 느꼈기
때문이다.

보조금보다 세계시장에서의 불안정한 가격이 이들에게 더많은 부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규제완화는 개혁중의 개혁이라 불릴정도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임금결정등 각종 노사문제에 대한 중앙의 개입과 간섭이 대폭 축소 됐다.

또한 91년 고용계약법시행으로 고용자와 피고용자사이에 법적 구속력을
갖는 1대1 계약체결이 가능해졌다.

이는 양측 모두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임금협상이 가능해져 효율적인
노동시장운영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이법이 시행되기전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가 33만1,000일이던것이
94년 3만8,000일로 큰 폭으로 줄어들어 뉴질랜드의 노동시장이 얼마나
안정을 되찾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법이 가져다준 최대의 특혜는 생산성향상이었다.

또한 91년이래 매년 평균 3.3%의 고용증가율로 인해 실업률도 급속하게
줄었다.

뉴질랜드 정부부처의 장은 장관(Minister)이라는 호칭을 쓰지않는다.

대신 요즘 기업회장에게 붙여진 CEOs(Chief Executive Officer)에서 본딴
CEs( Chief Executive )로 불린다.

뉴질랜드 정부개혁을 설명해주는 좋은 예다.

즉 정부부처가 하나의 기업인 셈이다.

정부와 계약제로 고용된 이들 CE는 직원의 채용 해고등 인사권을 갖는다.

이익실현을 최대목표로 하는 개인기업과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이들
부처는 책임있는 회계관리원칙을 채택했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부문의
재무제표를 작성했다.

따라서 CE는 목표치달성에 실패할 경우 당연히 물러날 각오를 해야한다.

자율과 책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와함께 "군살빼기"를 단행, 정부부처조직을 50%이상 축소해버렸다.

심지어 10명안팎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부처도 있다.

부처의 리엔지니어링과 함께 재정운영등 중앙정부에 집중됐던 업무도
단위부서로 과감히 이양해버렸다.

뉴질랜드에서는 현금만 있으면 누구나 공기업등 정부재산을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공기업 민영화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88~94년사이 뉴질랜드통신공사등 약30여개의 공기업이 민간의 손으로
넘어갔다.

공기업민영화가 가져다준 이익은 막대했다.

예를 들어 통신공사의 경우 민영화되자마자 직원수를 거의 절반으로
줄였다.

그덕분에 생산성은 87% 향상됐으며 이익은 300%나 늘었다.

통신공사뿐만이 아니다.

철도청은 민영화이후 화물요금을 50%가까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자경영에서 벗어나 이익을 실현하면서 제궤도위에서 잘 굴러가고
있다.

양떼울음과 파도소리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났던 뉴질랜드경제와
산업현장의 우렁찬 엔진소리가 경제개혁과 함께 남태평양을 뒤흔들어
깨우고 있다.

< 김수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