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표준규격을 둘러싼 경쟁은 소니-필립스진영의 MMCD(Multi Media
Compact Disc)방식과 도시바를 중심으로 마쓰시타, 파이오니아, 히타치,
프랑스 톰슨, 미 타임워너, MCA 등 7개사가 공동개발한 SD(Super Density)
방식간의 싸움이었다.

양측은 1년여동안 치열한 경합을 벌이다가 지난해 9월 극적으로
양측통일안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합의한 통일규격은 도시바진영의 SD방식을 축으로 삼는대신
데이터저장에 필요한 신호처리회로의 변조방식은 소니-필립스의
규격을 채택한다는 것이었다.

양측이 규격통일을 합의한데는 비슷한 상품을 동시에 내놓고 니전투구를
벌이는 것 보다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게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DVD 개발은 93년 4월 도시바가 미국의 영화오락회사인 타임워너로부터
아이디어를 제공받아 가장 먼저 나서면서 시작됐다.

고화질에다 서라운드 음향을 담을 수 있는 저장매체를 멀티미디어시대에
맞게 소형화.대용량화하자는 것이 DVD개발동기였다.

가전과 AV(오디오.비디오) 분야에서 표준을 획득한 경험이 거의 없는
도시바로서는 기술의 실용화 가능성 보다 과연 사용자들로부터 얼마만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더 신경을 썼다.

도시바는 기초기술의 개발이 마무리된 다음부터는 이를 사용자의
요구에 맞게 수정하는데 주력, 미국 영화사들과 일본 유럽의 가전메이커
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획득했다.

CD와 같은 크기인 직경 12 의 디스크 한면에 1백35분짜리 영화 한편의
분량인 5기가바이트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이 바로
도시바진영의 DVD였다.

소니와 필립스측은 DVD 개발에 뛰어든 시기는 이보다 1년정도 늦은
94년3월이었다.

두 회사는 지난 78년 CD규격 표준화를 주도, 음악용 CD와 컴퓨터CD롬
분야에서 엄청난 독점이윤을 누렸다.

필립스의 경우 4백30여종의 CD롬 특허를 보유한데 따라 특허료수입만
연간 1억달러이상씩 챙길 수 있었다.

이같은 독점이윤이 DVD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위협받게되자
독자적인 DVD규격 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소니는 뒤늦은 참여에 따른 열세를 만회하기위해 세계최대 가전회사인
마쓰시타전기를 끌어들여 도시바진영에 맞섰다.

그 결과 CD크기의 광디스크 한면에 3.7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 DVD시작품을 94년 10월 발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미국영화사들은 소니-필립스진영이 개발한 DVD가 차세대
저장매체로는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용량부족이 맹점이었다.

소니측은 원래 DVD를 "CD의 개정판"쯤으로 여겼다.

음악용CD와 컴퓨터CD롬의 기능만 대체한다면 충분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고 미영화사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신제품을 만들어내면서
모든 사용자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는 거만한 태도로 독자규격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러던중 양측의 대립관계에 균형을 깨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마쓰시타가 영화와 같은 동화상정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제품을
내놓을 땐 큰 기대를 걸 수 없다고 보고 94년 12월 갑자기 도시바진영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이에 따라 싸움의 주도권이 도시바진영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듯했다.

소니가 DVD개발에 쏟아부은 수천억엔의 투자비가 물거품이되기
직전이었다.

이때부터 소니는 월트디즈니 등 미영화사들을 대상으로 자사규격을
채택해 줄 경우 3년동안 1억달러이상의 리베이트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비상작전에 나섰다.

DVD가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공급업체간의 출혈경쟁이 불가피해
보였다.

표준선점을 위해 두 진영이 똑같이 제품을 내놓을 경우 초기부터
제살깎기식 경쟁이 벌어질게 뻔했다.

마쓰시타의 합류로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도시바진영은 상품화일정을
늦추고 소니측에 사전타협을 제의, 마라톤 협상 끝에 결국 95년 9월
규격합의에 이르게 됐다.

DVD개발에 참여한 기업들은 상품화일정 차질과 설계변경 등으로
각사마다 적지 않은 손실을 입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쉽게 깨지지 않을
표준에 합의한 것은 더 없이 큰 수확이었다.

어찌됐건 올 10월께부터 시장에 나올 예정인 DVD는 비디오테이프
음악용CD CD롬 등 가전 AV 컴퓨터분야의 기존 표준들을 한꺼번에
파괴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 박순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