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 보낸 답변서는 한마디로 "OECD가 원하는
것을 거의 다 들어준 추가개방 리스트"로 평가된다.

정부는 지난 7월초 OECD가입을 위한 최종협상인 CMIT/CIME(자본이동 및
국제투자)위원회 합동회의 이후 "더이상 추가개방은 없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번 답변서에는 각 부문의 개방폭을 넓히는 것은 말할것도 없고
우리 기업들에 대한 역차별조항까지 삽입했다.

OECD측이 지난달 19일 우리 정부에 보내온 서면질의는 크게 8가지 항목으로
대부분 "자본시장 추가개방"쪽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다.

정부는 "우리 경제에 무리가 없는 범위내"라며 요구한 모든 항목에 "성의"
를 표시했다.

이번 추가개방의 핵심은 정부가 개방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현금유입
억제" 장치가 도처에서 무너졌다는 점이다.

우선 내년부터 외국인투자기업이 해외모기업으로부터의 5년이상 장기대출을
받을수 있게돼 사실상 현금차관이 가능해진다.

98년부터는 대기업무보증사채에 대한 직접투자도 허용된다.

구체적인 개방폭과 조건들은 따로 결정되겠지만 내년부터 해외에서 유입
되는 현금이 크게 늘어날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정부는 내년부터 SOC(사회간접자본) 민자유치 제1종사업중 대형
국책사업을 위한 현금차관도입이나 해외증권발행을 허용한다고 이미 발표해
놓고 있어 97년엔 밀려드는 외자가 경제운용의 큰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의 동의를 전제로하는 우호적인 M&A(인수합병)의 정부승인대상을
내년부터 "총자산 2조원이상"인 약 70개 대기업으로만 국한시켜 놓은데다
2000년까지 외국인의 1인당 투자한도를 종목당 10%까지 확대하기로 한것도
주식.M&A시장에서 외국자본의 활동공간을 상당히 확보해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개방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아주 직접적이다.

우선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현금차관허용은 외국의 싼자금을 접할 길이
상대적으로 적은 우리 기업과 비교할때 외투기업에만 특혜를 주는 "역차별"
이란 지적을 피할수 없다.

또 국내와금리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외화가 쏟아져 들어오면
통화관리를 어렵게 하면서 물가를 자극하게 되고 원화절상입력까지도 받게
된다.

해외직접투자에 대한 자기자금조달의무비율을 98년부터 없애기로 한것도
결국엔 외입에 의한 것이어서 국내기업에 대한 "규제완화" 명분은 퇴색하고
말 것이다.

지난해 이 제도를 만들때 재계의 강력한 반대속에서도 "기업의 재무구조
건실화를 위한 어쩔수 없는 조치"라고 강변한 정부가 1년도 안돼 외부압력
으로 정책을 포기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론 자본시장의 본격개방은 "내외금리차가 2% 이내이거나 물가
상승률이 3% 이내를 유지하는등 거시경제의 안정이 지속"하는 때나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OECD에 가입하지도 않은 상태의 개방속도가 이렇게 빠른 점을 보면
가입이후는 더욱 걱정스럽다는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OECD가입을 추진하면서 열어준 빚장이 구조선진화라는 "득"으로 나타날자,
과도한 개발이라는 "실"로 현실화될지는 두고볼일이다.

이제부터라도 국내금리를 낮추는등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개방은 손실로 다가올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