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루시아석유회사
의 지분을 인수키로 한 것인데 정부가 왜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통상산업부가 한보그룹의 이르쿠츠크가스전 개발사업 신고서를 반려한
지난 27일 한보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통산부가 한보의 사업계획서를 반려한 배경을 놓고 업계에선
설왕설래가 많다.

그중 하나가 "괘씸죄"설.

한보가 이르쿠츠크가스전 사업을 주무부처인 통산부와 사전 상의도 없이
추진했던게 화근이 됐다는 것이다.

통산부가 가스공사등 국내 7개기업으로 이미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느닷없이 한보가 "내가 주도하겠다"고 나섰으니 심기가
상했을 만도 하다는 분석이다.

사실 통산부는 "한보가 이르쿠츠크가스전 참여를 정부에 알려온 것은 발표
전날 오후 늦게였다"며 사업추진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었다.

그래서인지 통산부는 사업신고서반려도 한보측에 통보하지 않은채 언론에
먼저 발표해 버렸다.

이에대해 통산부 고위관계자는 "한보도 사업계획을 언론에 먼저 발표하지
않았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물론 통산부가 한보의 신고서를 반려한 것을 순전히 감정적인 대응이라고만
보는 것도 무리다.

"해외자원개발이라는 특수한 사업은 개별기업들이 서로 경쟁하기 보다
공동 추진하는게 바람직하다"는 통산부의 공식 설명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굳이 신고서를 반려해 한보가 어렵사리
성사시켰다는 루시아석유회사의 지분인수마저 원천 봉쇄할 이유가 있었느냐
는 의문은 남는다.

루시아석유회사 지분인수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나중에 국내 컨소시엄에
흡수하더라도 문제는 없지 않으냐는 일부의 지적을 귀담아 들을만 하다.

통산부는 지난해 행정규제완화 차원에서 해외자원개발사업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했었다.

차병석 < 산업1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