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의 파워시트 기능" "위성방송 수신기능을 단 리모컨" "핸들에
장착된 오디오 리모컨"등 이른바 버블경제시대를 풍미했던 "버블제품"들이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버블경제가 퇴조한 데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가전제품 자동차 등 내구성 소비재에서도 "기본기능"을 강조한 제품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역시 버블 경제의 퇴장을 반영하고 있다.

버블제품이란 버블경제의 산물이다.

버블경제에서 넘쳐 흐르는 돈을 겨냥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디자인을 요리조리 바꾼다거나 독특한 기능을 한두가지 붙여 만든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신제품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제품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제조업체들은 그동안 이같은 버블제품으로 짭짤한 재미를 봤던 게
사실이다.

별다른 부가가치 창출없이 외관을 살짝 바꾼다거나 몇가지 기능만
첨가하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재를 고급화하거나 손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능을 "구태여" 자동으로
바꾼 것도 버블이다.

그러나 올들어 경기가 급속히 퇴조하면서 제조업체들의 상품전략과
마케팅 전략에서도 버블줄이기가 한창이다.

버블성 상품전략은 백화점식 구색맞추기로 각종 제품을 나열하던 게
대표적이다.

가전사들은 우선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납품받는 소형가전품목수를
대폭 줄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0여개에 달했던 OEM납품 품목을 올해 28개로
축소했다.

LG전자도 마찬가지다.

올들어서만 10여개의 품목을 단종했다.

이는 OEM납품 품목수를 늘려 매출을 확대한다는 지금까지의 전략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자동차업계 역시 전반적인 경기불황의 여파로 옵션을 줄인 자동차들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8백50만원에서 8백95만원 선이던 아반떼 투어링의 가격을
최고 1백만원까지 내렸다.

백미러와 도어아웃사이드 글래스 몰딩의 소재를 변경했고 안개등은 아예
제외하는 등 기본사양을 변경한데 다른 것이다.

대우자동차 역시 아카디아 보급형을 시판하고 있다.

가격을 4천2백30만원에서 3천5백10만원으로 대폭 낮춘 아카디아LX가
보급형 모델이다.

이 제품은 조수석 에어백과 뒷자석 오디오 리모컨을 없앴다.

운전석의 메모리 파워시트 기능도 없앴다.

기아자동차의 크레도스도 마찬가지다.

스윙헤드 테스트와 핸들오디오 리모컨을 없애 가격을 20만원에서
68만원까지 싸게 만들었다.

이같은 움직임은 상용차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아시아자동차가 내놓은 15t덤프트럭인 그랜토시리즈의 경우 엔진사양과
운전석 침대사양 조정을 통해 가격을 최고 3백만원 낮췄다.

캡을 여닫는 장치를 자동에서 수동으로 바꾼 것도 가격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줬다.

상품 개발전략에서도 이같은 버블줄이기를 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명품 플러스원"은 기본기능에 충실하게 만든 대표적인
상품이다.

TV 화면 크기를 실제로 1인치 늘리는 효과를 냈다.

삼성은 명품 시리즈를 중심으로 나머지 TV모델을 점차 단종하거나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말하자면 일점집중전략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세탁기 냉장고 등 여타 가전제품에서도 비슷하다.

모든 제품에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수는 없는 대신 특정제품에 최고의
경쟁력을 갖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합성세제 메이커인 LG화학도 같은 생각이다.

"앞으론 기업의 간판이 될 수 있는 신제품만 개발하겠다.

상품전략도 소수정예로 나가겠다.

경쟁력없는 상품을 백화점식으로 생산해서는 채산성을 맞추기가
힘들다"(LG화학 상품기획팀).

한국보다 앞서 버블경제와 버블퇴조를 경험했던 일본기업들 역시 이와
유사한 전략을 썼다.

시세이도 화장품은 지난 94년 40여개 브랜드, 3천여종에 달하던 화장품
종류를 통폐합했다.

현재는 전체의 30% 가량을 축소했다.

최근 들어 버블제품의 빚이 바래는 것은 버블경제가 주저앉으면서 생기는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다.

버블경제가 퇴조하면서 버블상품도 창고속에서 뒹구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간 버블기능에 혹했던 소비자들의 외면도 한 몫하고 있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끌어안고 있던 버블제품을 어떻게 걷어내느냐가
새로운 현안으로 부상한 셈이다.

버블상품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