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실업률의 상관관계를 놓고 요즘 미금융계와 일부 학계가 뜨거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중 미국의 신규고용자수가 예상치를 웃돌고 시간당평균임금도
크게 상승한 것으로 발표되자 미금융계는 이를 물가비상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따라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설이 나오면서 뉴욕증시가
폭락세를 연출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주식시장은 고용사정이 개선됐다는 소식을
오히려 악재로 받아들이고 있는셈이다.

물가와 실업률간에는 반비례함수관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노스웨스턴대 로버트 아이스너
교수가"경제현상에 대한 그릇된 인식 때문으로 호들갑에 불과하다"며
따갑게 질책하고 나섰다.

지난 9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이스너교수의 이러한 주장을 긴급제언
형식의 기고문으로 실었다.

그의 기고문을 요약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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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6월 고용통계가 발표된 다음날 다우존스지수가 115포인트나
떨어졌다.

주식투자자들은 미국의 통화정책 담당자들이 칼 마르크스의 "산업예비군"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체제에서 산업예비군, 즉 실업상태의 유휴노동력이
없으면 체제가 붕괴된다고 주장했다.

예비인력들이 없을 경우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져 기업수익이 줄어들
것이고 이에따라 결국 체제가 무너진다는게 산업예비군론의 뼈대다.

칼 마르크스의 이 이론을 현재자본주의체체에 맞게 변형한게 바로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지 않는 실업"(NAIRU : 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이란 이론이다.

이 괴팍한 도그마에 충실하면 자본주의체제의 안정이 보장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신 항상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실업상태로 묶어둬야만 하고,
또 이로인해 성장의 기회도 잃게된다.

30년여년전 밀턴 프리드먼과 E.S 팰프스의 주장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도그마에 따르면 실업률을 사실상의 완전고용상태인 자연실업률 이하로
낮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NAIRU론은 만약 자연실업률 상태에서 통화나 재정을 확대할 경우
일시적으로는 고용확대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이후 물가가 점증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결국 가속적(Accelerating) 인플레이션현상이 나타나체제붕괴의
위기를 맞는다는 얘기다.

때문에 미통화당국의 든든한 체제방위군들은 이런 위기를 맞기전에
미리 대응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의 고용사정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킬 단계를
넘어섰다.

정책당국이 추정하는 적정 자연실업률은 6% 안팎이다.

그런데 최근 2년동안실업률이 6%선을 계속 밑돌고 있다가 최근에는
5.5%선까지 육박했다.

여기에다 올해 2.3%이상의 높은 성장이 예상돼 실업률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NAIRU론에 따르자면 미국은 체제붕괴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FRB는 위기상황을 막기위해 지난 1년동안 4차례나 금리를 인상했고
곧또 한번 금리를 올릴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실증적 근거 없이 이론적 도그마에 매달린 대응이다.

FRB나의회예산국이 긴축통화정책을 발표할 때 "인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을
낳는다"는데 대해 한번도 실증적 근거를 제시한 적이 없다.

실제로 과거 통계를 보면 저실업률 상태에서도 물가는 한번도 가속적으로
오르지 않았다.

실업률이 너무 낮을 경우 이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시장자율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실업률이 낮을 땐 생산비용이 증가하는 속도 보다 전체생산의
증가속도가 더 빠르고 제품가격인상요인도 적어 결국 실질물가를 억제하는
경우도 있다.

통화당국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간의 역상관관계를 수치화한
"필립스곡선"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본인이 지난 56년부터 95년까지 미국경제통계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간 상관관계를 추적해 본 결과 필립스곡선은 그려지지 않았다.

실업률이 9%를 웃돌때는 인플레이션도 확실히 낮았으나, 실업률이 9%에서
5%로 낮아질 때도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역상관관계는 실제로 많은 경제학자들로부터
공박을 당하고 있다.

MIT의 노벨경제학 수상자 로버트 소로스교수를 비롯, 제임스 토빈
예일대교수, 프린스턴의 마크 와트슨, 텍사스대의 제임스 갈브레이스,
영국의 프랭크 한과 로드 크로스 교수 등 경제학계의 많은 거두들이
필립스곡선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아직도 두자리수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는 유럽이나 실업률이
2-3%선에 불과한 일본에서는 필립스곡선따위는 퇴물로 전락한지 오래다.

현실과 맞지 않아서다.

미국의 금융계나 통화정책 담당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리=박순빈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