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환 LG정유 사업지원팀장 (부장)은 보통 회사원들과 같이 출근후
회사업무에 열중하지만 퇴근후에 곧바로 집에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센터와 기업체, 공무원, 사회단체 등에 강연일정이
빽빽하게 잡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강의내용은 색다르다.

기업체 부장이라는 직업에 어울릴법한 리더십, 처세술 등에 대한 강의가
아닌 우리 고유의 땅이름에 대해 강의한다.

"지하철 2호선 아현역이 있는데 올해 개통될 5호선 역이름으로
남아현이란 용어를 사용하려 했습니다.

우리말로 아현은 작은 고개란 의미이고 이를 표현하는 순수한 우리말
"애오개"가 있습니다" 그는 이처럼 지금까지 한자만을 사용해왔던
지하철역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애오개역을 비롯,굽은다리역 장한평역등이 그의 노력에 의해 바뀐
경우다.

이미 명칭이 정해진 지하철 역도 그에게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지하철 2호선 기지역은 단순히 차량기지가 있다는 이유로 정해진
이름.

본래 이 지역은 왕이 모내기했던 논이 있어 용답이라 불렸고 결국
용답으로 이름을 바궜다.

그가 우리 고유의 땅이름 찾기에 나선 것은 28년전이다.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사무소에서 측량작업을
하던 이씨는 우리나라 각 지방을 돌며 지역 토박이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지명을 들었던게 계기가 됐다.

"너들이(판교) 새갈(신갈) 굼말(궁촌) 등 토박이들에게 들은 지명을
그대로 사용했다 호통을 맞았던 경험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왜 이런 좋은 이름들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가 결국 총무처의 정부기록보관소를 찾아 어렵게 관보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1940년 4월 1일부터 일제가 토지측량이란 미명하게
전국 대부분 지역의 이름이 한자로 바뀌게 된 것을 알게됐다.

한자로 바뀐 지명 대부분은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와
민족정기를 훼손하기 위한 술책이 들어있는 게 대부분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서울 중랑구의 본래 명칭은 중량구인데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바뀌게 됐다.

전북 옥구군의 개정면은 본래 개정에서 바뀐 경우.

열린 우물을 닫아버린 일본인들의 지능적인 술책가운데 하나다.

그는 고유의 우리 지명을 저인망그물에 비유한다.

지명의 연원을 찾다보면 그 지역의 역사와 지형, 마을 사람들, 전설,
풍속이 저인망그물에 걸려드는 것처럼 잡힌다는 얘기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를 찾고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막중한 일로
회사와 가정에 소홀해졌고 한동안 포기하다시피 했지만 우연히 인사동에서
발견한 춘향전 책자가 그를 다시 이길로 접어들게 했다.

"춘향전에 이몽룡이 과거에 합격한 후 춘향을 찾아가는 대목이
나옵니다.

갈밭(갈월동), 노들나루(노량진), 검은돌모루(흑석동), 여우제(남태령)
등 아름다운 우리말을 보고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0년 가까운 그의 노력은 이제 지하철역에 고유의 우리 명칭이 사용되게
됐고 초등학교에는 내고장의 유래에 대한 과목도 생겼다.

그의 이런 노력이 알려지면서 지난 11일에는 서울시가 수여하는
자랑스런 시민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게 됐다.

이씨는 "우리도 반성해야 합니다.

관악구에는 동이름이 신림, 봉천, 남현동 등 3개밖에 없고 전부 숫자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익이 걸려있는 일에는 적극적인 반면 우리 고유의 정신을 찾는데는
지나치게 소극적이지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이라며 정부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