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마련한 "회사정리절차 개선안"은 앞으로 부실기업을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특히 회사정리 과정에서 구사주의 경영권 참여를 원천 봉쇄해 법정관리제도
가 "기업주 도피처""특혜 의혹"이 되고 있다는 불명예를 말끔히 씻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대법원의 법정관리 개선안은 지난해 11월 법정관리 소홀로 인한 의류업체
논노의 부도와 지난 4월 유가공업체 서주산업의 어음 3백22억원 불법유통
사건으로 법정관리제도 개선에 대한 여론이 비등한 데서 비롯됐다.

지난 93년이후부터 95년까지 회사정리 신청사건 1백57건중 61%인 96건이
받아들여져 각급 법원은 법정관리 수용의 포화상태에 도달,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온 문제로 여론의 거센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회사정리 신청단계부터 엄격한 기준을 적용, 회생
가능성이 있고 공익성이 뚜렷한 기업에 한해서만 법정관리를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주거래은행의 운용 자금지원이나 제3자의 인수계획이 없는 한 법정관리신청
을 과감히 기각한다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기각된 회사는 화의나 파산절차를 밟도록해 기존회사를 해체케하거나
제3자 인수를 도모토록 유도, 재판부가 회생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받아들여
발생하는 문제를 원천 봉쇄하는 효과도 얻는다는 계획이다.

또 기업주는 단독으로 회사정리 신청이 어렵게 돼 신청전 고의부도를
내거나 재산을 해외도피시키고 제3자명의를 통해 재산을 은닉, 처분하는
등의 법정관리 악용사례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비전문가인 판사들의 심사를 배제하고 공인회계사나 경영컨설팅회사, 신용
평가회사등으로부터 업종별 조사위원을 위촉해 이들로 하여금 법정관리
신청회사를 심사토록 한 조치도 기업주들의 "법정관리는 마지막 돌파구"라는
인식을 버리도록 만들 것이다.

회사정리절차가 개시되더라도 부실한 경영을 한 기업주는 회사의 경영에
개입할 수 없다.

채무총액이 재산총액을 초과하는 경우 부실경영 책임으로 사주의 주식
전부를 소각해야 하며 신주는 인수의사를 밝힌 제3자 기업에만 배정돼
구사주의 경영간섭은 사전에 봉쇄되기 때문이다.

또 법정관리인은 중요사항을 재판부에 구두 보고해야 하고 금원지출허가
후의 지출상황및 정리계획의 변제이행 여부에 대해 감독을 받아야 하며
허위보고나 허가없이 어음을 발행할 경우 사법처리도 받도록 돼 있다.

그간 면제돼 오던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도 받아야 함과 동시에 채권자들과
이해관계인들이 정리회사의 경영을 감시할 수 있는 "모니터 제도"도 도입돼
경영의 투명성도 한층 보장될 전망이다.

그러나 개선안에는 법정관리 종결기간 단축과 채무상환 유예기간 조정등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아 채권자들의 부채조기 상환에는 등한시하고
있다.

작년 2월 법정관리중인 한진중공업이 포철계열사인 거양해운을 인수하는
기현상이 일어나도 법정관리 종결문제를 재판부의 재량에만 맡기고 있어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2백억원 미만의 중소기업이 신기술이나 특허, 노하우가
축적돼 있으나 자금의 어려움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이들이 주거래
은행의 운용자금 지원이나 제3자 인수기업이 없더라도 적극적으로 법정관리
를 수용키로 했다.

< 한은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