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제.통상외교력이 우려될 정도로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WTO(세계무역기구)출범 1년여를 맞아 경제.통상외교의 공세전환을
공언했던 정부가 다자간이나 양자관계에서 모두 제목소리를 못내고
저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최근 통신협상을 한창 진행하던 EU(유럽연합)로부터 사전예
고없이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당하는 수모를 겪고도 막상 지난 21
~22일 3차통신협상에서는 EU측 요구를 대부분 수용,"WTO에 약한 한국"
이라는 이미지를 재확인시켰다.

또 일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들이 금융관련위원회 2차심사를
우리측이 희망하는 7월이 아닌 9월중순이후로 연기시킬 움직임을 보이자
서둘러 투자자유화 및 개방일정을 앞당겨 확정짓고 이를 연일 발표하고
있다.

이는 당초 OECD "초청"으로 가입을 추진키로 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가입시켜달라고 통사정하는 위치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와 러시아간의 경제공동위원회는 개최일정이 지난해 12월에서
올해 상반기로 연기됐으나 최근 러시아측으로부터 5월개최안마저 거부당
해 다시 9월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이에 따라 20억달러(이자포함)에 달하는 대러경협차관상환을 비롯 연해
주전용공단개발 모스크바무역센터건설 등 현안이 원활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중형항공기공동개발계획이나 고화질TV(HDTV)개발계획도
제자리걸음이다.

한.중양국간 산업협력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양국전문분과위원회회의와
산업협력위원회는 일정조차 잡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브라질의 자동차수입제한조치에 대해서도 국내자동차업계가
반년가까이 수출을 못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뚜렷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경제.통상외교의 약화는 부처이기주의 종합대책기능미흡 전문가
부재 등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정부 당국자는 수입선다변화제를 예로 들며 "OECD가 철폐를 요
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OECD는 물론 당사자인 일본조차 원론적으로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며 상대방의도와 요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정부일각의 부족한 대응능력을 지적했다.

< 허귀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5일자).